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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활 속의 교회법62: 자살한 분의 장례미사는 할 수 없나요?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26 조회수4,470 추천수0

생활 속의 교회법 (62 · 끝) 자살한 분의 장례미사는 할 수 없나요?

 

 

한국은 잘사는 나라들(OECD) 가운데 2003년부터 작년까지 무려 15년 동안 자살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이고 제주도는 현재 자살자가 증가하는 비율이 전국에서 제일 높은 지역입니다. 그래서 제주교구에서도 자살한 분에 대한 장례미사가 종종 이루어지는데 자살한 사람의 장례미사를 해 주어도 되냐고 물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선 1917년 교회법전 제1240조 1항 3호는 ‘숙고하여 고의적으로 자살한 사람’은 교회 장례식과 장례미사를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1983년 현행법전에서는 위의 조항이 빠졌습니다. 대신 제1184조 1항 3호에 ‘신자들의 공개적 추문이 없이는 교회의 장례식을 허가해 줄 수 없는 그 밖의 분명한 죄인들’에게는 교회 장례식과 장례미사가 금지된다고 명시하였습니다. 형벌을 부과하는 것과 관련해서 교회법은 조문을 확대해서 해석하지 않고 좁고 분명하게 해석하기 때문에(18조) 현행법전에서 ‘숙고하여 고의적으로 자살한 사람’에 대한 명시가 빠진 것은 자살한 이에 대한 교회 장례식과 장례미사 금지 규정이 폐지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917년 법전에서 ‘자살한 사람’이라 하지 않고 ‘숙고하여 고의적으로 자살한 사람’이라고 한정한 점을 살펴야 합니다. 왜냐하면 ‘숙고하지 않고 고의적이지 않은 자살’에 대해서는 교회 장례식이나 장례미사가 가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법상 죄는 어떤 행위가 죄인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온전한 정신으로 고의적으로 의도하여 실제적인 범행을 저질렀을 때 죄에 대한 책임이 완전하게 성립합니다. 그것이 죄인 것을 자기 탓 없이 전혀 몰랐다거나 온전한 이성의 사용 중에 고의적으로 의도하지 않았다거나 정신적 혼란 때문에 이성의 사용이 결여되었던 이는 중대한 죄책이 인정되지 않아서 처벌되지 않거나 형벌이 완화됩니다(1323조, 1324조).

 

자살은 십계명의 제5계명을 거스르고 하느님의 것인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살해하는 중대한 범죄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자살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범죄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온전한 이성의 사용으로 하느님의 법을 거스르기로 고의적으로 의도하여 행하였을 때에 교회법적으로 중대한 죄책이 인정되는 범죄로서의 자살이 성립됩니다.

 

미국심리학회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편람 제5판(학지사, 2015)을 살펴보면, ‘우울장애’에 해당하는 정신질환들의 경우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살현상이 나타나고, 특별히 ‘주요우울장애’의 경우에는 반복적인 죽음에 대한 생각과 함께 자살 시도나 자살 수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고 합니다. 양극성장애 환자의 경우에는 자살 위험도가 일반인의 약 15배에 이르며 특정공포증 환자는 일반인에 비해 약 60% 정도 더 높은 자살 시도를 보인다고 합니다. 해리성 정체성장애의 외래 환자 중 70%가 자살을 시도하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자살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합니다.

 

대한의사협회지(2011년 4월호) 특집기사 「우울증과 자살」에서는 미국국립정신건강협회의 보고에 의하면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질환이 자살의 중요한 원인으로 자살자 가운데 90% 이상이 정신질환자라고 합니다. 특히 자살이나 자살행동은 단순히 스트레스에 의한 반응이 아니라 세로토닌을 포함하여 신경전달물질이라고 불리는 뇌 안의 화학물질의 변화에 의한 것으로, 우울증 환자와 자살을 시도한 사람 그리고 자살에 의한 사망자의 경우 뇌에서 세로토닌 저하 증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따라서 마치 암에 걸린 환자가 암을 극복하지 못하면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과 같이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이 병이 깊어지면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자살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에 의해 자살하였거나 심한 충동장애에 의해 자살한 것은 고의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거스른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병이 심화되어 돌아가신 것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교회 장례를 치러야 하고 장례미사를 봉헌해 주어야 합니다. 더구나 영혼을 돌보아야 하는 교회의 사명을 생각할 때 무거운 책임감으로 우리 사회에 정신적인 질환으로 마음에 병이 든 이들이 없도록 더욱 노력하기로 다짐해야 합니다.

 

[2019년 11월 24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제주주보 3면, 사법 대리 황태종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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