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곤소곤 교리] 천상 교회와 함께하는 참회 참회 예절 때에 드리는 고백 기도에는 ‘형제’라는 표현이 두 번 나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 고백 기도에서 말하는 ‘형제’가 천상 형제를 말하나요? 아니면 지상 형제를 의미하나요? 고백 기도는 사적인 참회 기도에서 발전한 공동 참회 기도입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뒤에 정리되어 로마 미사 경본에 도입되었지요. 이 기도의 특징은 참회의 형제적 성격을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이전의 참회 기도문에서도 공동 고백과 여러 성인들을 부르며 탄원하는 두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상과 천상의 공동체 참회 예식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잘못 때문에 하느님 앞에 온전히 홀로 설 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깊이 체험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몸인 교회가 죄인과 함께 기도하고 죄인의 속죄를 위해 온 교회가 협력하며 함께 책임을 지는 것을 말합니다. 개인적인 잘못일지라도 하느님 백성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바오로 사도는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할 때 그 고통을 몸 전체가 느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1코린 12,26 참조). 고백 기도에서 첫 번째 ‘형제들’은 지금 전례에 참여하고 있는 지상의 형제들로서 우리는 함께 참회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형제들’은 모든 성인과 함께 계신 천상 형제들로서 그들에게 중재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현장인 세상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아 주님의 뜻에 미치지 못한 일들이 수두룩합니다. 언제나 죄가 만연하여 날마다 죄에 넘어지고 쓰러지기 일쑤입니다. 한마디로 세상은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기에 무척 힘들고 팍팍한 곳입니다. 사탄이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우리 안에 쑤셔 넣는 일에 능란하기에 그렇습니다. 평화를 거부하도록 유인하며 마음에 분을 채워 비판하도록 이끌어 가기에 그렇습니다. 마침내 핏대를 세우도록 부추겨서 손에 돌멩이를 쥐어 주기까지 하니 더 그렇습니다. 사소한 일에서 ‘약자’를 무시하게 만들고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 정의인 듯 포장하여 우리를 속이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바른길을 버리고 그릇된 길로”(2베드 2,15)가도록, “몸을 씻고 나서 다시 진창에”(2베드 2,22)빠져드는 어리석은 삶을 반복하도록 유혹하니 그렇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믿음에 ‘부도’를 내도록 재촉하니 그렇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에게 심히 유감스러운 곳입니다. 우리보다 훨씬 영리하고 교활한 사탄의 농간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결코 수월하지가 않으니까요. 그 때문에 주님께서는 회개하여 변화된 새 사람에게는 결코 그날이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루카 21,34) 않을 것이라 약속해 주셨습니다. 회개가 참된 행복을 향한 걸음임을 밝혀 주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회개하는 사람을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콜로 1,22)이라고 증언했습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회개는 그저 그분께 자신의 죄를 나열하면서 신세 한탄을 늘어놓는 것도, 자신의 죄악을 끝까지 붙들고 괴로워하는 자학이 아닙니다. 회개란 그분께 시선을 고정하여 그분의 순수를 만나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분 사랑의 방식을 영혼에 새겨 날마다 흔들림 없이 복음을 살아내는 삶입니다. 그러기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닐지라도 세상의 이 꼴 저 꼴 아닌 꼴들에 마음이 성가시고 뒤숭숭하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상대의 허물에 속이 상하여 분노하고 비방하게 된다면 하느님과 동떨어져 있다는 증거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단호히 돌아서야 합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우리의 이러한 허약함을 아십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를 단죄하고 죄를 물어 벌하려 하시기보다 참회하면 거듭 용서해 주시겠다고 당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버지이신 그분의 사랑이 ‘죄에서 돌아서 회개하면 완전히 새 사람으로 변화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통 큰 자비의 법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회개를 했음에도 용서받지 못할 죄는 세상에 없습니다. 이토록 큰 용서를 보장받은 ‘죄인’이기에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희망하고 수시로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미사를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일상의 근심’으로부터 탈출하도록 다독여 주시고 그분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이 진리에 근거하여 사제는 공동 고백과 중재를 통해서 사죄경을 선포하고,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나라를 희망합니다. 나아가 참회함으로 죄의 추한 모습을 말끔히 씻음받는 존재임을 믿습니다. 미사는 삶에서 얻어진 숱한 상처가 치유되는 능력의 현장입니다. 땅에서 바치는 미사에 천상의 교회가 함께하는 신비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선물로서 가장 큰 특권이며 은총입니다. 더욱이 가톨릭 교회는 미사에서 “모든 성인의 통공”을 말하며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영적 교류가 있다는 진리를 선포합니다. 교회의 바탕은 하늘이며 미사의 은총은 땅과 연옥을 아우른다는 진리를 밝힌 것입니다. 이렇듯 미사는 하늘과 땅이 교통하는 신비이기에 서로 영신적 보화를 주고받습니다. 더욱이 모든 성인의 통공으로 도움을 얻는 일은 오직 가톨릭만이 누리는 특별한 보화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미사를 통해 성인들의 전구에 따른 도움을 얻으며 죽은 이들을 위해 미사의 은혜를 나누는 일에 게으를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하찮은 공로를 귀히 여기시고 한 영혼을 구하는 빌미로 삼아 주시니, 진실로 큰 감격으로 미사에 참례할 수 있습니다. * 한 해 동안 ‘소곤소곤 교리’를 써 주신 장재봉 신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 장재봉 스테파노 - 부산교구 선교사목국장으로 지낸 4년을 주님의 ‘개인 지도’ 기간이었다고 믿는다. 그 배움을 본당 사목에 실천하고자 ‘하느님의 눈’, ‘성모님의 눈’, ‘신자들의 눈’, ‘가난한 이웃의 눈’으로 월평본당을 꾸리려 애쓰는 주임 신부다. [경향잡지, 2019년 12월호, 장재봉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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