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49. 공감하고 이해하고 손잡고(「간추린 사회교리」 144항) “그랬구나, 힘들었구나” 공감은 공존을 향한 첫 발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맘충 팔자가 상팔자야. 한국 여자랑은 결혼 안 하려고.”(소설 「82년생 김지영」 중, 익명의 남성이 동료들과 나눈 대화) 엄마, 아내, 며느리 책과 영화로 만들어진 ‘82년생 김지영’은 한국사회에 고요하지만 묵직한 파장을 주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육아와 돌봄이 여성의 부담이라고 진단하면 과한 이야기일까요? 남자인 필자가 보기에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힘들어 보입니다. 우리 주변에 성차별은 아직도 많습니다. 형제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결혼을 하는 순간 여성들은 세 가지 신분을 얻는다고 하지요? 엄마, 아내, 며느리. 어느 것 하나 안 힘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임신과 출산으로 직장에서부터 불이익과 경력단절을 당하고, 힘든 육아가 온전히 그들의 몫으로 강요되며 급기야 그것이 여성혐오로 귀결된다면 이는 폭력·죽음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이는 존재감 없이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어머니들과 내 가족, 친구, 동료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익숙했지만 부당했던 것 현대사회 여러 화두 중 하나는 여성인권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젠더(gender)는 평등한 성역할이 아니라 막강한 권력구조로서 여성에게는 매우 불리하게 작용해 왔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익숙했지만 그것은 분명히 편견이자 잘못이었습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배움의 기회를 빼앗기고, 며느리라고 침묵과 순종만을 강요당하고 뱃속의 아기가 딸이라는 이유로 핍박 받은 여성들, 우리는 그 부당한 사회구조와 잘못된 인식을 바라봐야 합니다. 얼마 전 한 여당 관계자가 “힘든 남성도 많다”고 논평했다가 혹평을 당했습니다. 힘들게 살아가는 남성도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지금의 여성인권에 대한 고민은 남성·여성을 떠나 진정으로 기회마저 빼앗긴 약자의 처지에 대해 올바로 인식하자는 것입니다. 어떻게 공존해 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자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공감함은 더 나은 사회적 가치와 담론을 형성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절실한 ‘존중과 배려’의 실천 소설의 저자는 묻습니다. “과연 김지영은 회복될 수 있을까요?” 그러려면 성찰과 인정, 존중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엄마다움은 고귀한 사랑과 모성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그에 대해 존중과 배려 없이 감내와 희생만을 요구한다면 분명 불의한 것입니다. 저도 남성으로서의 특권을 많이 누려 왔습니다. 공짜·특권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이뤄진다고 하지요? 파란만장했던 한국 현대사의 여러 어려움은 어르신들을 포함한 많은 분들의 수고로 극복됐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들, 수많은 여성들의 희생도 참으로 컸다고 생각됩니다. 참으로 감사하고 많이 미안합니다. 82년생 김지영으로 시작된 이 파장이 우리 마음을 두드리는 울림이 되길 바랍니다. 닫혀 있는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 공감하고 이해해 주며 손잡는 울림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수많은 김지영님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머물지 모릅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응원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비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지닌 존엄성은 인간이 다른 사람 앞에서 갖는 존엄성의 기초가 된다. 또한 이것은 인종, 국가, 성별, 출신, 문화, 계급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 사이의 근본적인 평등과 우애의 궁극적인 바탕이다.(「간추린 사회교리」 144항) [가톨릭신문, 2019년 12월 15일,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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