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53. 청년들에게 희망을! - 세대 간 신뢰와 소통의 회복(「간추린 사회교리」 43항)
꼰대와 요즘 것들… 양보하지 않으면 공생은 어렵다 청년회장: 신부님, 언제나 저희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주임신부: 에이, 내가 더 고맙지! 청년회장: 신부님께서 항상, “아, 그래?”, “그랬구나.” 하시며 저희 말씀을 잘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많이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것도 감사하고요. 주임신부: 나도 너희들이 늘 자랑스럽고 고맙단다! 관찰: 각종 책임론과 세대갈등 한국의 사회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사회적 갈등이고 이를 반영하듯 우리나라의 사회통합지수는 10점 만점에 4.17점으로 매우 낮은 편입니다.(한국보건사회연구소,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 방안 연구보고서, 2019년 4월) 여러 사회적 위기나 불안과 맞물려 포용사회, 희망사회가 요원하고 차별과 소외가 심한 사회라는 인식도 있습니다. 그중 세대갈등이 있으며 세대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책임론이 강합니다. ‘낀세대’, ‘86세대’, ‘88만 원세대’ 등의 표현은 각 세대 상호 갈등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세대갈등은 청년문제와도 깊이 연관됩니다. 또 한국은 심각한 청년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런데 각 세대마다 어려움이 없었을까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부터 에코붐 세대(1977~1997년생)에 이르기까지 어느 시대에나 어려움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청년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는 무엇입니까? 사회적 신뢰와 소통의 회복입니다. 판단: 불통과 독선의 상징, “라테 이즈 호스!!”(Latte is horse!!) “라테 이즈 호스!!”(Latte is horse!!) 들어보셨나요? 비슷한 발음과 언어유희를 섞어서 만든 은어인데 “나 때는 말이야!”라는 뜻입니다. ‘꼰대’라는 용어와 함께 ‘아랫사람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려함’, ‘소통이 부재한 상황’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특정계층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비교적 젊은 중장년을 비롯해서 청년층에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신념만이 옳다는 독선이 많다는 것이지요. 결국 세대를 막론하고 서로를 갈라놓는 벽이 많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대화를 독점하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모든 상황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가 아닐까요? 청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가치관만 중요하다는 편향된 시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에게 한 수 배운다는 마음도 분명 필요합니다. 사회문제는 양자가 맞들어야 해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성과 성찰, 겸허한 수용이 없는 일방적인 책임전가와 비판은 문제를 악화시킬 뿐입니다. 그러므로 세대갈등과 청년문제 등을 풀기 위해서는 각 세대가 각자 잘해야 합니다. 중장년층은 중간세대로서 포용적이고 교량적인 역할을 하고, 청년들도 모든 세대가 공감하는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상호 소통과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지요. 실천: 누가 먼저 양보할래요? 물꼬를 트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구든 먼저 손을 내밀어야겠지요? 아직 젊은(?) 필자인 저는 청년보다는 기성세대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후배들이고 동생들인 청년들을 먼저 도와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어른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어른의 덕은 들어주고 베풀어 주는 넉넉함이 아닐까요? 그게 바로 지혜입니다. 들어주는 것만큼 귀한 것도 없지요. 오해라는 물꼬가 트여 진실의 바다에서 마음과 마음이 맞닿기 때문입니다. 유튜브와 스마트폰으로 이어폰을 낀 풍경 속에서 정녕 마음의 문마저 서로 닫히는 것은 아닌가 우려됩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들어줄 때, 소통과 변화를 통해, 우리 모두가 승자(勝者)가 될 것입니다. 물론 청년들에게도 권고합니다. “부모님처럼 살기 싫어요!”, “부장님처럼 살기 싫어요!”라는 극단적 인식보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들어주십시오. 젊음의 본질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그래야 성장이 가능하니까요. 그래서 젊음은 긍정적 개방과 친교, 쇄신과 변화라는 복음적 가치에 뿌리를 둡니다.(「그리스도는 살아계십니다」 26~35항) 세대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가 양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런 마음들이 햇살처럼 우리의 갈등을 녹이며 사랑의 문화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구원을 받고 성령 안에서 새 사람이 된 인간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사랑할 수 있고 또 사랑하여야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4항) [가톨릭신문, 2020년 1월 12일,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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