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세상의 빛] 56. 주님의 피(「가톨릭 교회 교리서」 606~623항)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간 죄의 보속을 위한 희생제사 1882년 프레드릭 카벤다쉬와 토마스 버크를 찔러 죽인 브라디라는 사형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은 지옥에 가도 좋으니 자신을 고발한 사람은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형 집행 전날 한 수녀님이 그에게 면회 신청을 했습니다. “브라디씨, 저는 어떤 사람을 몹시 미워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해도 용서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데 사실 나의 신앙으로도 그를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브라디는 처음 보는 수녀에게 제법 대견하게 대답했습니다. “안 되지요. 용서하는 데는 까닭이 없지요. 그냥 마음을 풀어 버리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이때 수녀는 브라디의 손을 잡으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나는 뵈닉스 공원에서 버크를 죽인 당신을 용서하겠습니다. 그는 나의 오빠입니다.” 그러자 브라디는 충격을 받았는지 그 큰 눈을 한참 감고 있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저를 고발한 사람을 용서합니다. 이제는 마음이 후련하네요. 감사합니다.” 용서의 힘은 자신 안에서 저절로 샘솟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용서하기 위해 흘린 피가 또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웃을 용서 못하는 상태가 죄인데,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용서받지 못해서입니다. 수녀님의 용서가 없었으면 브라디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모든 인류의 죄를 용서하신다는 하느님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하느님의 용서를 믿는다면 나도 모든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내가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나의 죄도 함께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통해서 인류의 결정적인 속량을 완성하는 파스카의 희생제사이며, 동시에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일치시키는 새로운 계약의 희생제사이다. 신약의 이 제사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신 성자의 피를 통해 이루어진다.”(613항)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한 파스카의 피이고, 또 우리도 서로 용서해야 한다는 계약의 피입니다. 모든 죄는 이웃과 하느님을 향한 폭력입니다. 따라서 인간에게만이 아니고 하느님께도 용서를 받아야 완전히 용서받는 것입니다. 죄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그리스도의 수난공로를 통해 나의 죄가 다 씻겼음을 믿어야합니다. 만약 그것을 믿는다면 누구도 심판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실 수 없다고 믿으면 그리스도의 피를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면 인간 예수님이 죽으신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느님 예수께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불순종을 보상하기 위하여 성부께 당신의 생명을 바치시는” 희생제사입니다.(614항 참조) 자기 자신을 제물로 살라 바치며 살아있을 수는 없습니다. 내 죄를 위해 사람이시자 하느님께서 피를 흘리시기 위해 죽으셨음을 믿어야 그 감사함 때문에 이웃도 용서할 힘이 생깁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어떠한 죄를 짓든,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을 하든 다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마태 12,3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피와 성령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가 “샘에서 물이 솟아나듯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라는 샘에서 솟아나는 생수”인 ‘성령’이라고 가르칩니다.(694항 참조) 바오로 사도는 “자기를 거룩하게 해 준 계약의 피”를 모독하는 자가 “은총의 성령을 모독한 자”라고 말합니다.(히브 10,29)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 내 죄를 없애시기 위해 죽으셨고 또 나도 이웃을 용서하라고 죽으셨다고 믿어야 그분의 피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20년 2월 9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영성관 관장 · 수원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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