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교리]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교황 (1) 성 바오로 6세, ‘행동하는 사도’ 2018년 10월 14일 성인품에 오른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는 현대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교리의 나침반으로 여겨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이하 공의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위대한 교황으로 꼽힌다. 물론 고령의 나이와 짧은 임기에도 불구하고 공의회를 소집하고 개최한, 성 요한 23세 교황의 공로도 높게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다만 선임 교황의 선종으로 자동 종료된 공의회를 재개하며, 여러 반대와 논쟁에도 불구하고 교회 쇄신과 개혁을 이뤄낸 바오로 6세의 강한 신념이 없었다면, 공의회는 아마도 미완성으로 남아있었을지 모른다. 공의회 이후 전해지는 새로운 변화들은 온 세상을 놀랍게 하며, 교회 안팎으로 환호와 지지를 받기에 충분했다. 공의회는 이전과 달리 좀 더 보편적이고 사목적인 성격을 띠며, 무엇보다 교회와 세상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통해 교회가 세상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임을 천명했다. 그 결과 전 세계 주교들의 대표자 회의체이며, ‘작은 공의회’라고 불리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설립, 미사 때 교회 전례 공식 언어인 라틴어 대신 모국어 사용, 그리고 종교 간 대화와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한 노력 등 참으로 값진 결실을 거두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바오로 6세는 공의회의 정신과 내용이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실현될 수 있도록 직접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일례로 그는 1964년, 교황으로서는 첫 번째로(외국을 방문한 최초의 교황이다!) 예루살렘 성지를 방문해 동방정교회의 총대주교인 아테나고라(Atenagora)와 형제적 포옹을 나누며 긴 분열 속에 얼어붙어 있던 동 · 서방 그리스도인들의 대화에 물꼬를 텄고, 결국 공의회 폐막 전날(1965.12.27)에는 1054년 이뤄졌던 상호 파문 철회를 이끌어내었다. 바오로 6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교회일치를 위해 가히 혁명적인 행위를 한다. 그는 1975년에 아테나고라의 후임자인 디미트리오스(Dimitrios) 총대주교의 대리인인 멜리톤(Melitone) 대주교의 발에 입맞춤을 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교황의 파격적인 행위는 “오직 성인(聖人)만이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행동”(멜리톤)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실제로 그리스도인 일치운동에 마중물이 되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점은, 교황의 ‘입맞춤’은 결코 ‘즉흥적’인 행동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묵상과 기도’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바오로 6세 교황은 공의회 정신의 실현을 위해서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더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것을 이미 반세기 전에 몸소 본을 보여주었다. 이 때문일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오로 6세를 복자품에 올리면서 이렇게 고백한다: “고맙습니다! 친애하는 바오로 6세 교황님! 당신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보여준 겸손하고, 사랑에 찬 예언자적 증언에 감사합니다!”(2014.10.19.). [2020년 5월 17일 부활 제6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윤태종 토마스 신부(팔봉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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