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은총] 성령 - 성령 하느님 마법사가 지팡이를 하늘로 치켜든다. 주문을 외우니 하늘에서는 신령한 기운이 지팡이를 향해 쏠리게 되고, 화면 속에서 그것은 지팡이를 향해 내려오는 빛처럼 그려진다. 이제 마법사가 지팡이를 휘두른다. 지팡이에 모아진 기운은 땅에 있던 물체들에 전해져 하늘로 떠오르는 공중 부양을 일으키기도 하고, 또 지팡이의 기운을 받은 누군가는 신령한 능력을 지니게 된다. 마법사의 스토리는 어린이들을 위한 만화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였다. 이제 그 스토리는 더욱 다양화되고 인간의 상상의 폭은 넓어져,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까지도 판타지라는 장르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어린이와 어른 할 것 없이 가지고 있는 동심의 상상, 곧 인간이 이룰 수 없는 상상의 세계를 그려놓은 판타지 영화를 과도한 진지함으로 분석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기이한 불꽃을 뿜어내는 지팡이를 가진 영화 속 마법사가 되려는 사람들, 어린이의 동심이 아닌 은밀한 의도를 품고 있는 어른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영화를 영화로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그들과 그들이 유혹하는 이들을 향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 가운데 제 3위격인 성령(聖靈)은 인간의 이성적인 사고로는 명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하느님이시다. 물론 하느님을 인간의 생각과 언어로 모두 담아내고자 한다면 그 또한 인간의 교만일 것이다. 하지만 성령 하느님께서는 세상이 창조되던 그때에도 성부 하느님과 함께하시면서 사람들에게 당신을 알려주셨다. 또한 사람들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밝혀 드러내 보이셨다. 그렇게 성령 하느님은 성부 하느님과 성자 하느님과 함께 지난 역사 안에서 함께 계셨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예수님의 몸과 피를 모시며 그분 안에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도록 지금도 우리를 이끌고 계신다. 우리가 세상의 유혹에 넘어져 당신의 길을 찾지 못할까봐 항상 우리 옆에서 사랑의 손을 내밀고 계시는 구원 자체이신 분이다. 인간은 거룩한(聖) 영(靈)의 하느님 존재를 표현하기 어려워했다. 그래서 숨결, 공기, 바람으로, 물과 불로, 구름과 빛으로 그리고 비둘기로 성령의 활동을 체험해왔고 표현해왔다. ‘상징’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느님 앞에 미소(微小)한 자신의 능력을 깨달으며, 조금이라도 더 하느님의 사랑을 표현하고자 해왔다. 그런데 누군가는 성령이 마법사의 지팡이에서 나오는 기이한 불꽃이라고, 그것은 상징이 아닌 실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이한 불꽃이 능력을 가져오는 것처럼 그리며, ‘상징’이라는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지팡이의 마법이 곧 성령이라고 주장한다. 저마다의 유사종교 이단 분파에는 교주라고 불리는 ‘자칭 신(神)’이 존재한다. 그들은 어떻게 신이 되었을까? 아니, 정확히 말해, 어떻게 신이 되었다고 짜맞출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지팡이의 마법에서 발휘되는 성령이 그들을 하느님으로 만들어준다. 그들이 성령 하느님을 깨닫는 것은 역부족이다. ‘상징’이라는 것도 이해하기 복잡하다. 그러나 우리 민족 안에 자리한 정령(精靈)이나 토착 신령, 혹은 귀신과 같은 무속신앙(巫俗信仰)은 왠지 성령과 비슷한 개념과 같이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성령을 ‘떠돌이 영’으로 취급한다. 성령은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을 만드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떠돌이 영은 한 사람을 하느님으로 만들 수 있단다. 마치 마법사가 열심히 마법의 주문을 외우면 불꽃의 신기한 기운이 마법사의 지팡이에 내리듯이, 떠돌이 영은 한 사람의 육체에 내려 그를 하느님으로 만든다고 한다. 그렇게 영을 받았던 이가 2천 년 전에는 예수였고,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빠져나간 영은 지금 이 시대에 자신들의 교주에게 내렸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이 착실히 실현된 결과, 우리나라에는 하느님이 50명이나 만들어져 버렸다. 창조 때 사람의 코에 하느님께서 불어 넣어주셨던 숨과 세상을 창조한 말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시기 위해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을 잉태하신 성령. 오순절 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과 부활을 통해 영원한 생명으로 드러나는 사랑의 신비를 완성하신 성령. 그리고 지금도 교회 안에서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기 위해 우리를 묶어주는 사랑의 끈으로, 그리고 교회의 거룩한 일(聖事)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이루어 함께하시는 그분을, 우리는 성령 하느님이라 믿어 고백한다. 성령은 누군가의 육체가 하느님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수단의 떠돌이 영이 아니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이시다. [2020년 8월 23일 연중 제21주일 인천주보 4면, 명형진 시몬 신부(선교사목부 부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