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90. 질병 팬데믹과 사회적 팬데믹 - 회칙 「모든 형제들」(「간추린 사회교리」 390항)
세상의 상처 보듬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답이다 베드로: 향후 몇 년간 취직이 어렵대요. 다 무능한 정부 때문이에요! 마리아: 맞아! 다 정부 잘못이야! 그들은 무조건 나빠! 바오로: 왜 정부 잘못이야? 뭘 잘못했다고? 이게 다 무조건 야당 잘못이야! 데레사: 외국인 노동자들도 문제에요! 우리 자리를 다 빼앗잖아요! 다 추방해야 해! 이 신부: 다들, 진정하세요! 바이러스 팬데믹에서 사회적 팬데믹으로 하루빨리 종식되길 간절히 바라면서도 이제는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현실이 될지도 모를 ‘With 코로나’ 시대, 거리두기, 생계 걱정, 내년이 더 어려울 거라는 막막함, 미래에 대한 불안은 참으로 슬픕니다. 정상적 기능을 다할 수 없는 사회, 문화, 정치, 경제, 종교 영역은 이제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의 줄도산, 노동자들의 대량해고와 실업 증가, 노년층 어려움과 청년들 구직난과 같은 사회 전반에 걸친 재난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강박과 분노, 허무를 강제합니다. 더 무서운 것은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들 사이에 일종의 높은 벽을 세워 단절과 무관심, 심지어 적대감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질병의 대유행만이 아닌 사회적 팬데믹의 확산입니다. 바로 무관심과 배타성, 이기주의와 욕심이 확산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좌절과 분노, 허탈함이 커지는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합리적이고 건강한 토론 대신 진실이 결여된 거짓 논리와 극단적 진영논리, 공격과 과장이 횡횡합니다. 이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존 앨런은 이를 시끄럽고 화를 잘 내며, 적대를 일삼는 새로운 모습의 정치라 표현합니다. 사회적 팬데믹의 결과입니다.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 지난 10월 4일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새로운 회칙에 서명하셨고 각국에서 번역에 착수했습니다. 총 8장, 4만 단어로 이뤄진 세 번째 회칙인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전부터 준비된 것이었고 공교롭게도 가장 어려운 시기에 발표됐습니다. 회칙은 신자유주의의 폐해(168항), 구조적 빈곤과 가난, 이주민, 사형제도 등을 망라하며 인간은 홀로 구원 받을 수 없음을 기조로(32항, 54항) 참된 인간존엄의 토대에서 인류가 형제애와 협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른바 벽의 문화를 만드는 것은 팬데믹뿐만이 아니라 우리 욕심과 이기심, 무관심이며, 이것은 하나의 유혹이며(27항) 이를 깨트리기 위해 우리가 모범으로 삼아야 할 것은 바로 착한 사마리아인이라고 합니다.(56~71항) 당신은 폭행을 당한 사람입니까? 그냥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사람입니까? 그도 아니면 그냥 사람을 때리고 물건을 훔친 강도에 불과합니까?(69항) 우리는 하루하루 내적 투쟁 속에서 선택을 위해 고민하지만, 사랑으로 인내하고, 고통 받는 이웃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께서 격려하신다고 합니다.(71항) 절박한 호소 몇 년 전 봤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책 제목이 무척 암울했는데 안타깝게도 최근 최고 자살률과 최저 출산률, 흙수저·금수저 논란, 세습자본주의와 공정과 희망 상실, 이로 인한 청년층 자살 증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지표들은 세상과 우리 사회가 너무도 아프고 절박하다는 참담한 구조신호이며 교황 회칙은 그 신호에 함께 손을 내밀자는 호소입니다. 어둠이 가장 짙을 때 새벽이 밝아 온다고 했던가요? 그러나 그 새벽에 깨어 일어난 이가 아무도 없다면 새벽은 희망의 시간이 아닌 여전히 잠든 시간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과 사회는 회복돼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이고 모두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황께서 회칙의 마지막 부분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권능으로 교회는 세계에 새로운 생명을 주길 원하며 그 세계는 우리 모두가 평등한 형제자매로 살고, 버려진 이들도 함께할 수 있는 평화와 정의가 빛나는 그런 세상입니다”(278항 참조)라고 하십니다. 더 어려워질지도 모르는 세태 속에서 절실하게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 바로 이웃사랑과 형제애 실천입니다. “시민 정치 생활의 심오한 의미는 단순히 개인의 권리와 의무를 나열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사회생활은 시민 우애와 형제애를 바탕으로 할 때 그 중요한 의미를 띤다.”(「간추린 사회교리」 12항) [가톨릭신문, 2020년 10월 18일,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