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91. 열쇠의 권한(「가톨릭 교회 교리서」 976~987항)
하늘 나라 열쇠는 죄를 용서하는 권한 세상에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점점 큰 죄를 짓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점점 덜 짓게 되기도 합니다. 이 차이는 작은 죄책감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여성 26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 유영철은 자신의 살인을 ‘이혼한 아내에게서 당한 정신적 충격’으로 돌립니다. 만약 살해하기 전에 이혼한 아내를 용서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연쇄 살인범 정남규는 “나처럼 그런 폭력의 피해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저처럼 됐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사람을 바로 용서했다면 어땠을까요? 신창원은 선생님에게 폭언을 듣고 자신 안에 “악마가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사정이야 어쨌건 자신도 죄를 짓는 처지에서 사람의 잘못을 끝까지 용서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작은 죄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점점 큰 죄로 나아갑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이때 바로 하느님 자비를 믿고 용서를 청했다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끝까지 죄책감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나뭇잎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고 나무 뒤로 숨거나 혹은 자신들의 죄를 남 탓으로 돌렸습니다. 죄는 죄책감 낳고, 그 죄책감은 더 큰 죄를 낳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죄를 없애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위한 ‘피’를 흘리셨습니다. 인간의 죄에 대한 보속을 다 해 놓으신 것입니다. 인간은 하느님께 와서 죄 사함을 받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느님 앞에 선다면 얼마나 떨릴까요? 그래서 교회라는 것을 세우시어 그리스도의 공로와 죄 사함의 권한을 맡기셨습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입이 떨어지지 않아도 같은 죄인들인 인간에게 죄를 고백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죄의 용서를 믿나이다”라고 고백할 때, 이는 교회를 통한 죄의 용서를 믿는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의 작용으로 교회 안에서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도록 하늘 나라의 열쇠를 받았습니다.”(981) 하느님께서는 교회 안에서 사제들이 행하는 죄의 용서를 하늘에서도 승인하십니다.(983) 분명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없애주시기 위해 죄 용서의 권한을 주시며 교회를 파견하셨는데, 교회에서 죄를 용서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 큰 죄로 향하겠다는 말이 됩니다. 지금의 죄책감을 해결하지 않으면 더 큰 죄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가톨릭 신자는 세례를 통하여 처음으로 죄가 사해짐을 믿고(977 참조) 또 죄를 지으면 고해성사로 새롭게 죄를 씻습니다.(980 참조) 교부들은 고해를 “수고스러운 세례”(980)라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세례와 고해를 통해 인간이 죄를 용서받는다고 죄로 편향된 인간 “본성의 모든 나약함”까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죄의 용서를 받고도 “끊임없이 악으로 이끌어가는 사욕(邪慾)의 충동과 싸워야 합니다.”(978) 이 말은 죄 사함을 한 번만 받아서는 안 되고 마치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듯 수천 번 넘어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기가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그래서 다시 일어서려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두 발로 걷지 못하게 됩니다. 고해성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자로서 같은 죄를 너무 자주 짓는다고 고해성사를 포기하면 그 죄에 대한 죄책감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AP연합 통신은 40년간 죄책감으로 시달려온 어느 노인 이야기를 보도했습니다. 그 노인은 아무에게라도 자기 죄를 고백하지 않고서는 더는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워싱턴의 한 은행에서 수천 달러에 달하는 돈을 횡령한 지 40년이 지나서야 죄를 자백하였습니다. 그가 재판부에 넘겨지자 재판장은 “이 경우에는 이미 공소시효가 많이 지났기 때문에 벌금이 부과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괜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인생을 허비하면 안 됩니다. 죄책감이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용서로 사라지지 않는 한 어떤 것으로도 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죄책감은 사제를 통해 말씀하시는 참 재판관이신 그리스도께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요한 8,11)는 말씀을 들어야 완전히 사라집니다. 죄는 재판관만이 용서해 줄 수 있습니다. 죄에서 조금씩이나마 해방되려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용서하는 당신의 신적 권능”(976)인 “하늘 나라의 열쇠”를 교회에 맡기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가톨릭신문, 2020년 10월 25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죽산성지 전담 겸 영성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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