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 국제 공동체 (4) 무관심의 세계화 현대 인류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품과 서비스, 자본과 노동이 국경의 제약을 넘어서 경제적 세계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세계화를 이렇게 평가하십니다. “세계화는 선험적으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2001년, 교황청 사회학술원 연설) 도구로서의 세계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평가대로 세계화 자체는 인류가 새롭게 마주한 도구일 뿐입니다.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도구 그 자체로는 선과 악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성격이 갈립니다. 같은 도구라도 하느님께 봉사하는 데 쓰일 수 있고, 반대로 탐욕을 위해 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인류는 이 세계화라는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요? 이 시대를 두고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보고 계시며, 후손들은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누가 울었습니까? 이탈리아의 최남단 람페두사섬은 북아프리카와 가깝습니다. ‘난민’이라는 단어 자체가 혐오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수의 아프리카 난민이 작은 보트에 몸을 실어 이곳을 목표로 항해하여 옵니다. 그 와중에 목숨을 잃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것입니다. 2013년, 이곳을 무려 첫 번째 외부 순방지로 찾으신 교황님께서는 강론 중에 이렇게 되물으셨습니다. “누가 이 형제자매들의 죽음에 대해 울었습니까? 누가 이 배 위에 있던 사람들을 위해 울었습니까?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엄마들을 위해, 가족을 부양하려 일자리를 찾는 남자들을 위해 누가 울었습니까?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고통을 나누며 우는 경험을 상실한 사회 안에 있습니다. 무관심의 세계화가 우리들의 우는 능력을 제거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연대의 세계화를 향하여 우리는 인류가 창조된 이래로 가장 풍요롭고, 서로가 가까워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풍요 속에서 역설적으로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있습니다. 내 풍요를 누리기에도 너무나 바쁜 세상이기에, 이웃을 돌아볼 시간이 없습니다. 경쟁과 승자독식을 당연시하는 풍조는 한 국가 안에서도 통용되지만, 국제 관계 역시 지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승자가 누리고 패자가 고통받는 이 상황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이런 마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세계화라는 도구가 하느님 보시기 아름다운 방향으로 사용될 리 만무합니다. 우리 시대는 지금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요? “세계화 과정은 올바로 이해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면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부를 재분배할 수 있는 유례 없는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그러나 그릇된 방향으로 나가면 빈곤과 불평등을 증대시킬 수 있고 심지어 전 세계적 위기를 촉발할 수도 있습니다. 민족들 사이에 그리고 민족들 내부에 새로운 분열을 야기하는 일부 심각한 역기능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교황 베네딕토 16세, 회칙 「진리 안의 사랑」, 42항) [2020년 11월 22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의정부주보 5면, 김승연 프란치스코 신부(수동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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