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주간 특집] 사회교리 - 공동체적 삶 위한 그리스도인 지침
세상 모든 영역에서 복음적 가치 실현 노력 펼쳐야 - 교회가 공동선을 위한 최전선에 나섰던 것은 바로 교회가 가르치는 사회교리의 힘이었다. 사진은 1987년 2월 명동성당에서 열린 故 박종철군 추도미사 후 진행된 침묵시위.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교회는 인권 주일로 시작되는 대림 제2주간을 2011년부터 사회교리 주간으로 지내고 있다. 신앙인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하느님의 계명대로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하지만 교회는 신앙인은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며, 공동체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교회의 사회교리는 이처럼 공동체적 삶을 살아야 하는 신앙인들에게 삶의 지침이다. 교회는 사회 문제에 능동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한국사회는 지난 세기를 격동 속에서 살아 왔다. 특히 한국전쟁 후 민주 국가를 건설해 나가는 와중에서 우리는 이념 투쟁, 독재 정치, 급속한 경제 발전과 그 와중에서 인권 침해, 민주화를 위한 투쟁, 사회정의 실현 등 격동의 세월을 겪었다. 교회는 그 거센 변화의 물결 속에서, 민주적 정치 체제와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가난하고 힘든 이들이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돕기 위해서 노력했다. 억압과 핍박을 무릅쓰고 교회가 공동선을 위한 최전선에 나섰던 것은 바로 교회가 가르치는 사회교리의 힘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종종 적지 않은 신앙인들이 “교회가 왜 세속의 일에 간섭하느냐?”며 성직자는 성당 안에서 미사나 거행하고 신자들도 성당으로 들어가 기도나 하라고 말하는 것은 사회교리의 중요성과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간추린 사회교리」는 72항에서 애당초 “교회의 사회교리는 교도권이 사회 문제에 수없이 개입하면서 만들어졌다”고 명확하게 표명한다. 본래 교도권은 현실 사회 문제에 개입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지닌다. 교회의 교도권이 국가의 자율성을 존중하지만, 교회는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들의 구원이 요구할 때에는 정치 질서에 관한 일에 대해서도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정당하다”(「사목헌장」 76항)고 선언한다. 이처럼 교회는 인정받지 못하고 침해받는 권리들, 특히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약한 이들의 권리를 판별하고 수호해 사회정의를 세울 사명이 있기 때문에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복음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사회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 사회교리란? 교회의 사회교리는 근현대, 특히 산업혁명 이후 비인간적인 환경 속에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의 의미, 국가 역할 등을 성찰한 레오 13세 교황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1891년)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존엄성에 주목해, 교회는 ‘가난한 이를 위한 우선적 선택’과 ‘공동선’을 부르짖으며 인간 사회에 대한 교회의 태도와 존재 방식을 천명했다. 교회의 ‘노동헌장’으로 불리우는 이 회칙은 이후 인권과 인간 발전, 각종 평화운동과 사회정의 구현을 위한 노력의 대헌장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교회의 다양한 사회교리서들은 「간추린 사회교리」(2004)로 묶였다. 사회교리는 ‘믿을 교리’와 함께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을 인도하는 ‘지킬 교리’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개인의 성화를 위한 노력에만 머물지 않고 이웃과 친교를 나누고 봉사하며, 공동체로서의 사회와 공동선을 위해 헌신하도록 요구한다. 그래서 사회교리는 가정과 생명, 성(性),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노동과 인권, 평화 등 사회 모든 영역에서 신앙인이 지켜야 할 원리와 윤리 준칙, 가치관을 제시한다. 사회교리의 원리들 이러한 사회교리는 근본적으로 ‘인간 존엄성’을 바탕으로 한다.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동등한 존엄성을 갖는다.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모상이기에 그 영광을 반영하고 있으며, 하느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똑같은 존엄성을 갖고 있다. 사회교리는 이같은 인간 존엄성을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원리로서 공동선과 연대성, 보조성의 원리를 제시한다. 특히 교회는 가난한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촉구한다. 우선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공동선의 원리가 나온다. ‘공동선’이란 집단이든 개인이든 누구든 충만하고 용이하게 자기 완성을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 조건의 총화를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재화의 올바른 분배와 이웃 사랑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국가는 공동선의 요구에 따라 올바른 정치 제도를 만들 책임이 있다. 하지만 국가와 공공기관들의 개입은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적절히 제한돼야 한다. 공권력이 남용되지 않고 전체주의와 집단주의가 사회를 지배하지 않도록, 국가는 개인과 집단이 자유로이 활동하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리고 공동선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연대성’의 원리를 실현한다. 가벼운 동정과 연민에 머물지 않고 공동선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강력하고 항구적인 결의를 바탕으로 모두가 모두에게 책임을 갖는 의식이다. 사회교리의 영역 사회교리는 사회의 모든 영역에 적용된다. 독재 정치에 맞서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1970년대와 1980년대 교회의 헌신과 투신은 사회교리에 투철한 신앙의 모범적 사례다. 민주화와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이 불타 올랐던 당시에도 역시 이른바 정교분리 원칙을 앞세우며 신앙을 교회 울타리와 개인의 영성에 가두려는 모습이 만성적으로 존재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시대착오적이고 반복음적인 신앙 태도는 교회 일각에 남아 있다.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교회의 태도는 신랄하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 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 맹목적 자본주의에 대한 단호하고 강경한 태도는 오늘날 사회교리의 가장 중요한 논지를 반영한다. 인간을 소모품으로 여기고 자본과 이윤의 절대적 가치와 무한경쟁을 최고의 지상 과제로 삼는 오늘날 자본주의는 반복음적이라는 것이 사회교리의 입장이다. 인간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은 수많은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을 양산하며,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를 통해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돈벌이를 위해 위험으로 내몬다. 교회는 사회교리적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이러한 불평등하고 차별적이고 무책임한 사회 체제를 비판하고 법과 제도의 변화를 촉구한다. 교회는 환경과 생태 문제를 온전히 신앙의 문제로 여긴다. 자연환경 훼손은 인간생태, 즉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차별 및 억압과 동일시된다. 이는 필연적으로 인간생태 훼손으로 연결된다. 자연생태 파괴로 인한 재해의 가장 큰 피해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돌아간다. 교회는 이러한 환경 위기가 잘못된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이 결탁한 불의한 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판단한다. 낙태와 자살, 사형제도 폐지 등 문제는 교회가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적 가르침의 영역이다. 인권과 생명 문화의 영역에 주어지는 교도권의 사회교리적 관심은 절실하다. 특히 최근에는 낙태법 폐지와 관련해 교도권의 사회교리적 개입이 단호하게 이어지고 있다. 많은 경우, 교도권의 사회적 개입은 가정과 생명, 문화와 복지의 영역에서 주로 이뤄진다. 하지만 교회는 정치와 경제 영역의 적극적 개입을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교회의 사회적 개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사회교리를 지나치게 좁게 이해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교회 안에서도 실천돼야 할 사회교리 “교회의 사회교리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하여 구체적으로 실천될 때 온전히 현실이 된다.”(「간추린 사회교리」 551항) 많은 경우, 교회는 사회교리를 주장하고 선언하는 데 그친다. 선언문과 성명서 낭독으로 사회교리 실천을 다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사회교리의 신뢰도는 오직 행동의 증거에서 드러난다. 사회교리는 특히 교회 자신의 삶 안에서 드러나야 한다. 그렇기에 사회교리는 세상에 대한 복음화의 호소와 교회 스스로 삶의 쇄신을 함께 요구한다. [가톨릭신문, 2020년 12월 6일, 박영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