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100. 사랑과 기도, 평화를 위한 노력(「간추린 사회교리」 207항) “어떠한 법이나 협상도 사랑의 호소를 능가할 수는 없다” “젊었을 때 나는 평화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제 겨우 하나 알게 되었어요. 평화는 고통 가운데서, 혼란 가운데에서 병과 늙음 그리고 죽음 한가운데서 하느님을 붙들고 있는 거라는 걸.”(공지영 「높고 푸른 사다리」 중) 하느님에게서 오는 평화 저는 소임 상 노동현장을 많이 다닙니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노사갈등 현장은 참 어렵습니다. 사측도 어려움이 있고, 노동자 입장에서 겪는 고초도 있습니다. 사업주의 눈물, 부당노동행위와 무책임한 해고도 많고, 산업재해로 자식을 잃은 부모에 이르기까지 그 속에는 첨예한 대립과 분노, 애잔함이 뒤섞여 있습니다. 주님 부활 대축일과 주님 성탄 대축일에 현장미사를 드리곤 했습니다. 작년 성탄절에도 광화문 광장에서 노동현장의 평화를 지향하며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추운 날씨였음에도 많은 분들께서 함께하셨습니다. 놀라웠던 것은 그 곳에 모인 많은 이들이 평화를 염원하는 간절함을 함께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방송 취재를 왔던 관계자들도 “이렇게 사람들이 함께 마음을 모은다면 못할 것도 없을 거예요!”라고 하더군요. 지나가시는 시민들께서도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천주교의 힘이겠지요! 마치 따뜻한 난로에서 빛과 온기가 나와 모든 이의 마음을 녹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흘러나오는 위대한 사랑의 신비가 사람들의 마음을 비추었던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모두가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체험했고 노동현장은 고되고 힘겹지만 뜨거운 마음으로 평화를 위한 일꾼이 될 것을 다짐했습니다. 평화가 필요한 우리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빵이 없어 배고픈 사람의 불행은 빵 하나로 해결되지만 빵이 너무 많아 불행한 사람에겐 대책이 없다”고 말이죠. 고단한 사람에겐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부유함이 선망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재화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욕심이 화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생명의 양식을 찾으라 하셨고(요한 6,27), 많은 현인들은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했던 걸까요? 현실을 위해 얼마간 재화는 필요하지만 일용할 양식과 창고에 쌓아 둔 재물을 구별해야겠죠! 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생계가 막막한 분들의 처지도 보듬어야겠으나, 동시에 누구나 성찰 속에서 영적인 양식도 구해야 합니다. 정녕 평화를 위해서 하느님 말씀이 필요합니다. 「간추린 사회교리」에서도 평화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라 합니다.(488, 489항) 평화는 하느님께로부터 나오고, 하느님 말씀, 미사와 성사 속에서 샘솟습니다. 사랑과 기도, 평화를 위한 노력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체험할 때가 있습니다. 전례뿐만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통해서도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늘 평화와 사랑을 주시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내 삶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씨앗으로 심어집니다. 「간추린 사회교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어떠한 법이나 법체계도, 어떠한 협상도 사람과 민족들이 일치와 형제애, 평화를 누리며 살게 해 줄 수는 없다. 어떤 이성적 사고도 사랑의 호소를 능가할 수는 없다.”(207항) 법과 제도의 한계와 더불어 그것을 완전하게 해 주는 것은 영적 힘으로서의 ‘사랑’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회의 어려움을 마주하고, 주변 이웃을 보듬고, 봉사하고 나누는 삶의 원동력은 바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입니다. 인간 존엄, 공동선, 보조성, 연대성, 재화의 보편적 목적(이웃을 위한 선용), 참여와 더불어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은 가톨릭교회가 제시하는 사회활동과 참여의 방법이며 모든 것을 완성하는 위대한 길입니다.(204항) 사랑은 하나의 샘처럼 그 속에서 정의, 덕, 자유, 지혜와 진리들이 흘러나오며, 사랑이 모든 것의 바탕이 될 때 모든 것에 생기가 돋고 개인과 사회도 평화로워집니다. 「간추린 사회교리」에서 가장 많이 언급하는 단어는 바로 사랑입니다.(328회 언급) 교회는 기도를 통하여 평화를 위한 투쟁에 참여한다. 기도는 마음을 열어 하느님과 깊은 관계를 맺게 할 뿐만 아니라, 존중과 이해, 존경과 사랑의 태도로 다른 이들을 만나게 해 준다. 기도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모든 평화의 참된 친구들, 곧 평화를 사랑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다양한 환경에서 평화를 증진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준다. 전례 기도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간추린 사회교리」 519항) [가톨릭신문, 2020년 12월 25일,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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