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104. 교회의 성사(「가톨릭 교회 교리서」 1113~1121항)
성사가 전례 안에서 어떻게 구원을 이루는가? 2013년 11월 15일, 미국 전역에서 화제가 되었던 다섯 살 꼬마가 만들어낸 영화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꼬마 마일즈 스콧은 태어난 지 18개월 만에 급성 백혈병 판정을 받습니다. 어른도 버티기 힘든 치료를 받으며 3년간 버틴 마일즈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었습니다. 배트맨이 되어 도시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마일즈의 소원을 들은 엄마는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한 재단(MAKE A WISH)에 이 소원을 신청하였습니다. 이 재단에서는 마일즈에게 기적의 하루를 선물하기 위해 약 한 달의 준비 기간을 갖습니다. SNS를 통해 모집된 자원봉사자만 무려 1만2000여 명이었고, 샌프란시스코 시청과 경찰까지 합세하여 도심을 배트맨 만화에 나오는 고담시로 재현하였습니다. 시민 역할을 위해 엑스트라만 수만 명이 참여하였습니다. 심지어 백악관까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고담시를 구해달라는 메시지를 마일즈에게 전달하였습니다. 대통령의 명을 받은 작은 배트맨 마일즈는 악당에게 잡힌 시민들을 구하고 조커를 감옥에 가두며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 냈습니다. 전 세계 17억 명이 SNS를 통해 동시에 시청하며 마일즈를 응원하였습니다. 마일즈는 배트맨이 되어 평생 잊지 못할 기적의 하루를 살았습니다. 더 큰 기적은 마일즈가 백혈병을 이기고 현재도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교회의 전례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전례도 사랑이 담긴 선물로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는 힘이 있습니다. 재단이 마일즈를 위해 준비한 그 많은 선물을 전례 안에서 보자면 ‘성사’(聖事)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마일즈를 향한 수많은 사람의 사랑이 그들이 준비한 선물을 통해 전달되었고 마일즈는 자신도 배트맨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 믿음이 그를 낫게 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힘으로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성사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믿게 만들고 그 믿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로마 1,17)라고 말하고,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로마 3,28)라고 합니다. 행위가 아닌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데, 그 믿음을 주기 위해 교회에 마련된 하느님의 선물이 성사입니다. 그리고 그 성사가 베풀어지는 방식이 전례입니다. 전례로 얻은 믿음은, 마치 마일즈가 배트맨이라는 믿음으로 병마를 극복한 것처럼, 비로소 하느님 자녀로서의 행위를 하게 만듭니다. 사실 ‘믿음’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보이는 어떤 것에 담겨 전달되어야 합니다. 사랑이 전달되어야 하는 이유는 피조물 안에서는 사랑이 저절로 샘솟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하느님만이 사랑이십니다.(1요한 4,8.16 참조) 그리고 그 사랑은 성령을 통해 피조물 안에 부어집니다.(로마 5,5 참조) 성령의 열매 중에 우리 말로 ‘성실’로 번역된 ‘피스티스’(pistis)는 ‘믿음’이라 번역해도 지장이 없는 단어입니다.(갈라 5,22 참조) 이렇듯 성령은 마치 “포도나무 가지에 열매를 맺게 하는 수액과 같은 분”(1108)이시기에 전례라는 통로를 통해 우리에게 믿음의 열매를 맺어주십니다. 그런데 성령이 나무에서 흐르는 수액과 같다면 그 포도나무는 무엇일까요?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성사들은 언제나 살아계시며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오는 힘’”(1116)에 의해 성취되는데, 그 힘이 성령이신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신약의 모든 성사들이 모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졌다”(1114)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성령 없이는 어떠한 성사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사는 “성령의 행위”(1116)이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성사’”(1118)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성사는 이제 “교회의 봉사자들을 통하여 성사 안에서”(1115) 신자들에게 베풀어집니다.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성령의 힘으로 교회를 통해 베풀어지는 성사는 결과적으로 우리를 전례 안에서 교회와 하나가 되게 하고 나아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게 하며 종국엔 그리스도와 성령을 보내신 하느님 아버지와 하나가 되게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은총으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마 8,5; 갈라 4,6)로 부를 수 있는 믿음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신문, 2021년 1월 24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죽산성지 전담 겸 영성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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