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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 안 상징 읽기: 중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인식한 미사 전례의 상징성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20 조회수2,134 추천수0

[교회 안 상징 읽기] 중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인식한 미사 전례의 상징성

 

 

– 굴리엘무스 두란두스가 쓴 책의 표지.

 

 

전례 의식의 각 요소에는 상징하는 바가 있다

 

굴리엘무스 두란두스(Gulielmus Durandus)라는 13세기의 교회법 학자는 당시의 미사 전례에 대해 해설하는 책을 썼다. 이 책을 통해 비록 당시의 미사와 오늘날의 미사가 조금 차이 나는 면이 있긴 하지만, 중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전례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미사 전례는 입당송으로 시작된다. 입당송은 전례 주례자인 주교(또는 사제)가 성당에 들어올 때 부르는 찬미가(시편과 소영광송), 곧 구세주 오시기를 갈망하던 구약의 성조들과 예언자들의 기다림을 표현한 장엄한 노래다. 그러니까 미사 전에 부르는 입당송은 정작 자신들은 결코 보지 못할 구세주의 오심을 갈망하며 기다리던 구약시대 선조들의 합창인 셈이다.

 

입당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미사를 집전할 주교가 들어온다. 이는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대리자가 입장하는 것이고, 그래서 주교의 등장은 온 인류가 기다려마지 않던 구세주의 오심을 나타낸다. 성대한 축일에는 주교에 앞서 촛불 7개가 열을 지어 들어오는데, 이는 성자 하느님 안에 그느르시는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들에 대한 예언자의 말을 상기시킨다.

 

- 캐노피 아래에서 이동하는 성체(성체 거동).

 

 

주교는 행렬용 차일(遮日)인 캐노피의 호위 아래 제대로 향하는데, 이때 캐노피의 네 기둥을 받쳐 든 네 사람은 4복음사가를 나타낸다. 주교의 오른쪽과 왼쪽에는 복사 두 명이 걸어가는데, 이들은 타보르 산에서 거룩하게 변모하신 예수님 곁에 있던 모세와 엘리야, 곧 율법과 예언자의 품위와 권위가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었음을 증언한 두 사람을 나타낸다.

 

주교는 자신의 자리(주교좌)에 앉아서 침묵하는데, 이는 미사 첫머리에는 주교가 수행할 몫이 없음을 나타낸다. 이 침묵에도 하나의 의미가 담겨 있는바, 주교는 자신의 침묵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그분의 생애 초반에는 드러나지 않게 묵상과 준비 중에 지내셨음을 상기시킨다.

 

이제 독서자가 봉독대로 가서 서간 성경을 소리 내어 봉독한다. 서간 성경 봉독은 요한 세례자가 예수님의 공적인 구세 활동에 앞서 사막에서 설교하였음을 상기시키며,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서간 성경 말씀을 들으면서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의 제1막을 짤막하게 살펴보는 것이다. 요한 세례자는 구세주께서 당신의 소명을 시작하시기에 앞서 사람들을 준비시키기 위해 설교했다. 그런데 그 설교는 유다인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에, 독서자는 구약 율법의 방향인 북쪽을 향해 서서 봉독하고, 봉독이 끝나면 요한 세례자가 주님께 그러했던 것처럼 주교에게 허리를 숙여 절한다.

 

서간 성경 봉독에 이어 화답송이 노래된다. 화답송은 사제나 부제가 복음을 봉독하기 위해 봉독대를 향해 계단을 올라갈 때 시편을 노래한 데서 유래한다. 그래서 전에는 ‘층계송’이라고 불렸다. 화답송은 요한 세례자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유다인들을 향해 회개하라고 가르친 것을 나타낸다. 그런 점에서 서간 성경 봉독과 화답송은 요한 세례자의 소명과 관련된다.

 

이어서 사제(또는 부제)가 복음을 봉독한다. 이제부터는 구세주로서 예수님의 활동(공생활)이 시작되고 그분의 말씀이 세상에 선포되는 시대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복음 봉독은 그 자체로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의 한 형태다.

 

복음 봉독 후에는 주교가 신자들에게 강론을 한다.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때인 이 순간에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주교는 교회가 세워지기까지의 기적들을 상기시켜 준다. 강론은 신앙의 진리가 어떻게 해서 처음에는 사도들에게 받아들여졌고, 그 다음에는 이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는지를 알려 주는 기회다.

 

– 2006년 서울대교구 사제서품식에서 주교관을 쓰고 사제 수품자에게 안수하는 정진석 추기경(사진 제공 - 정진석 추기경 비서실).

 

 

강론이 끝나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진리를 따르겠노라고 다짐하고 믿음을 고백하며 신경을 읊는다. 그런데 중세의 그리스도인들은 신경의 12개 조목들을 사도들과 연관지어서 받아들였다. 이를테면 신경의 각 조목들은 사도들 한 사람 한 사람과 관련된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14세기 이래로 사도들을 그림으로 그릴 때도 흔히 사도 개개인이 각기 자신과 관련되는 신경 조목이 쓰인 두루마리를 지닌 모습으로 묘사했다.

 

굴리엘무스 두란두스는 이러한 상징성들이 바로 미사의 첫 부분(말씀 전례)에서 볼 수 있는 신비로운 의미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설명은 거룩한 희생제사, 곧 성찬 전례로 이어지는 드라마에서는 일종의 서막과 같은 것으로, 이어서 그가 들려줄 해설은 더욱 많아지고 그가 제시할 상징성은 한결 풍성해진다. 간단하게 요약하고 적절하게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말이다. 그러기에 성찬 전례에서 볼 수 있는 상징성들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전례 집전자의 복식들과 기물들에도 상징하는 바가 있다

 

한편, 주교(사제)가 전례 때 착용하는 전례복이며 의식에 사용하는 기물들도 나름대로 상징성이 지닌 것들이었다.

 

가령, 전례 집전자가 몇 가지 전례복식들을 갖춰 입고 그 위에 최종적으로 덮어 입는 제의를 중세 그리스도인들은 계율과 계명들을 초월하고 포괄하는 최고의 계명, 곧 ‘사랑’의 표현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집전자가 전례를 거행할 때 목에 두르는 영대는 주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짊어지신 멍에(십자가)를 상징하며, 나아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소중히 여기고 기꺼이 짊어져야 할 멍에로 보았다. 그러기에 사제는 영대를 걸치거나 벗을 때마다 거기에다 입을 맞춘다.

 

주교가 전례 때 사용하는 모자(주교관)의 윗부분은 두 개의 산 모양으로 생겼는데, 이는 주교가 갖추어야 할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관한 지식을 상징한다. 그리고 주교관에 뒤편에 붙어 있는 두 개의 띠는 주교가 성경을 설명하고 가르칠 때는 성경을 존재케 하는 글자와 성령에 의거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 거룩하시다 종.

 

 

성찬 전례 중 ‘거룩하시도다’를 노래할 때와 성체를 거양할 때는 작은 종을 쳤다. 이 종은 ‘거룩하시도다 종(sanctus bell)’ 또는 ‘거양성체 종(sacring bell)’이라고 했는데, 이 종을 쳐서 나오는 소리는 집전자의 목소리로 여겨지며 신자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역할을 했다. 오늘날에는 이 용도로 사용하는 종의 모양이 다양해졌지만, 중세 때의 거룩하시도다 종은 전형적으로 십자가 모양의 틀에 작은 종들을 달아 놓은 형태였다. 그리고 이 종의 손잡이는 줄 세 가닥을 꼬아서 만든 끈의 형태를 띤 것이 많았는데, 이는 주교나 사제가 성경을 해설하는 일은 3중의 의미, 곧 성경 구절에 담긴 역사적, 우의적, 도덕적 의미를 모두 아우르며 설명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 뜻에서 복사가 이 종을 옮기기 위해 그 손잡이를 쥐는 것은 성경의 지식은 행동으로 실천되어야 한다는 뜻의 상징적인 표현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전례에는 부분적으로 변화가 생겼고, 이에 따라 이러한 상징성들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져 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상징적 의미들과 그에 대한 설명들은 교의나 교리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상징성들이 아예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관건은 해석 자체보다는 그러한 해석을 전제로 하여 받아들이는 신앙인들의 마음 자세다.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것들에 부여한 상징성을 무시하고 폄하하는 대신에 물질적인 것을 통해 비물질적인 것을 인식하거나 이해할 수도 있다고 보고, 그런 과정을 통해 순간적으로나마 하느님을 뵙거나 체험할 수도 있다는 믿음의 자세 말이다. 그렇게 중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진지하고 심오한 믿음을 엿볼 수 있으면 좋겠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2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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