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108. 가치에 대한 성찰 - 올바른 정의란 무엇일까 (5) 기본소득제도에 대한 소고(「간추린 사회교리」 25항) 연대성, 식탁에 모두가 앉을 공간을 만드는 것 “내가 말하는 연대성은 소외된 사람들을 돕기 위한 박애 사업이나 재정적 지원의 촉구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연대성은 단순히 식탁에서 빵부스러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식탁에 모두가 앉을 공간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렛 어스 드림」(Let Us Dream) 253쪽) 기본임금? 기본소득? 최근 기본소득제도 논란이 화제입니다. 공교롭게도 교황님께서 2020년 4월 12일 부활 메시지에서 “인간의 기본적 권리와 존엄을 부여하는 ‘Retribuzione Universale’를 생각해야 한다”라고 하신 표현을 두고 정치인들의 갑론을박도 벌어졌습니다. 여기서 ‘Retribuzione universale’는 ‘보편적 임금’ 정도로 번역되며 불로소득이 아닌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뜻합니다. ‘법으로 규정된 최저임금을 잘 주자’, 또는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될 수 있는 급여를 주자’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반면에 기본소득은 소득불평등 개선과 고용불안 상황으로부터 보호를 위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일정한 돈을 평생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세계적 불평등 심화, 신자유주의 한계를 배경으로 합니다. 따라서 기본임금과 기본소득은 그 의미가 엄연히 다르며, 교황님께서 언급하신 기본임금은 빈곤과 주거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정적인 일자리, 노동과 정당한 대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시행, 이를 위한 보편적 임금·고용체계의 정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작년 주님 부활 대축일, 교황님께서는 전 인류를 강복하시면서 우리는 모두 한배를 탄 공동체이며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기본소득제도는 더 나은 미래와 사회안정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나 준비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긍정적·부정적 효과가 모두 존재하며 막대한 재원 마련, 조세저항, 대상선정 문제와 불로소득의 정당화, 노동의지 감퇴 등 심각한 현실적 어려움도 존재합니다. 가족의 일원 같은 존엄성 마태오복음은 선한 포도밭 주인 이야기를 통해 하늘나라의 아름다움을 묘사합니다.(20,1-16) 그 선한 주인은 일한 시간에 상관없이 모든 일꾼에게 같은 품삯을 줍니다. 많이 일한 사람이 수고에 대한 보상이 적어 불평할 수 있지만, 적게 일한 사람일지라도 최소한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는 겉옷을 저당 잡힐 때 해 질 무렵 그것을 돌려주라고 하는데(24,13) 이는 이웃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를 뜻합니다. 「간추린 사회교리」에 기본소득제도를 직접 언급하진 않지만,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대로 인간다운 사회를 증진해야 한다고 합니다.(63항) 그리고 안식년과 희년을 통해 ‘재화의 본래 목적인 나눔과 선용’, ‘노예상태에서의 구원’, ‘욕심과 이기심에 지배됨을 거부하는 성숙한 인간상’을 제시하며(25항) 기본소득제도를 넘어서는 인간존엄과 이웃사랑, 인간 본연의 품위를 가르칩니다. 가톨릭교회는 자유경제제도의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지적하며 경제는 이익제일주의, 투기와 축재를 목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을 이롭게 하고 ‘가족의 일원 같은 존엄성’을 지향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가톨릭교회의 가르침, 제도를 넘어선 가치와 길을 제시함 따라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은 기본소득제도를 둘러싼 좁은 찬반 논란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세상과 인간이 바라보고 가야 할 근원적 길을 일러주고, 그 안에서 바탕이 돼야 할 가치인 ‘인간, 생명, 존중, 협력’을 제시하며 이를 위해 신앙·윤리·도덕적 감수성과 양심의 회복, 형제애와 연대성의 회심을 호소합니다. 당분간 기본소득제도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이며 그에 대한 건설적·비판적 논의도 요청됩니다. 하지만 이와 함께 인간 본연의 사랑과 거룩함을 회복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이웃을 이용하지 않고 이웃을 섬기는 우리, 이웃과 함께 걸으며 그에게 이웃이란 냄새를 물씬 풍기는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우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안식년과 희년의 규정은 일종의 축소된 사회교리이다. 이들 규정은 하느님께서 거저 베풀어 주신 구원 사건이 정의와 사회적 연대의 원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 준다. 또한, 안식년과 희년의 규정은, 정의와 사회적 연대의 원리가 이기적인 이해관계나 목적에 지배되는 관습을 바로잡는 힘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예언으로서 이스라엘의 모든 세대가 하느님께 충실하고자 한다면 따라야 하는 준거 규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간추린 사회교리」 25항) [가톨릭신문, 2021년 2월 28일,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사목국 성서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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