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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109: 가치에 대한 성찰 - 올바른 정의란 무엇일까 (6) 욕심, 영성, 정의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08 조회수2,060 추천수0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109. 가치에 대한 성찰 - 올바른 정의란 무엇일까 (6) 욕심, 영성, 정의(「간추린 사회교리」 119항)


욕심으로 상처 입은 사회, 영성의 회복으로 치유해야

 

 

부자가 둘러보니 쌀가마니는 사라지고 그 대신 지옥문이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으악, 이게 뭐야!”, “잘 봐라, 여긴 지옥이다.” 지옥 사람들이 커다란 식탁 주변에 빽빽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식탁 위에는 맛있는 음식이 푸짐하게 쌓여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지옥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쩍 마르고 눈이 움푹 들어갔습니다. 먹을 게 저렇게 많은데 왜 모두를 비쩍 말랐을까? 부자는 궁금했습니다. 그때 마침 지옥 사람들이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지옥 젓가락은 사람 키보다 훨씬 길었습니다. 저렇게 기다란 젓가락으로 어떻게 음식을 먹지? 부자는 또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김진태 글, 안세영 그림 「기다란 젓가락」 중)

 

 

천국과 지옥의 식탁 이야기

 

한 번쯤 들어본 천국과 지옥의 식탁 이야기입니다. 놀랍게도 천국과 지옥은 모두 음식이 푸짐하고 풍요로운 곳이라 합니다. 모두 긴 젓가락으로 식사를 하는데, 지옥은 저마다 먼저 먹으려 하니 긴 젓가락 때문에 음식을 먹을 수 없지만, 천국은 그 젓가락으로 다른 사람에게 먼저 주니 서로 잘 먹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긴 젓가락으로 자신만 먹으려는 지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겠지요. 먹지 못해 화가 나고, 옆 사람과 싸우고 풍요로움 속에서도 미움만 가득할 겁니다. 천국이 지금 이 세상과 크게 다를까요? 하지만 저마다 자신의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그곳이 지옥일 겁니다. 결국 어떤 마음과 태도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줍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바벨탑들

 

노동사목 소임 시절 중 이런 강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세상은 점점 윤택해지고 빌딩도 높아지는데, 정작 우리 주변에 소외되는 사람은 더 많아진다고 말입니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의 결핍, 속물근성, 능력주의를 현대인들이 갖는 3가지 불안 요소라고 진단합니다. 과거와 비교할 바 없이 풍요롭지만, 현대인들은 불안함을 많이 호소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수천 년 전 하늘 위로 솟았던 바벨탑이 오늘날 더 높아지고 종류도 많아졌습니다. 돈과 권력, 성공과 출세, 학벌, 쇼핑과 소비, 웰빙과 건강 등인데 문제는 지나친 욕심과 결합돼 하느님보다 더 중시되고 있습니다. 행복을 만드는 영적 가치들, 사랑·믿음·희망·겸손과 경청, 소박함, 침묵, 내려놓음과 비움, 순명 등이 실종되고 욕심과 이기심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불행일 뿐입니다. 이런 이야길 드리는 필자도 참 부끄럽습니다.

 

 

더 중요한 것을 기억하기

 

알랭 드 보통은 그 치유책으로 그리스도교 정신을 제시합니다. 그리스도교의 치유책이란 영성의 회복입니다. 그 방법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과한 욕심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간추린 사회교리」에서도 욕심이 죄의 뿌리이며 그것이 사회적 상처로 이어져 자신과 이웃 모두에게 비극을 초래한다고 지적합니다.(117~119항) 코로나19 사태는 수많은 불안을 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백신접종으로 사태의 끝이 보이려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공동의 집인 우리 사회엔 더 많은 숙제가 남았습니다. 이제 그 숙제를 해야 합니다.

 

더 높은 탑을 쌓으려는 욕심을 경계하고 또한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닌 우리가 잊고 있던 더 소중한 것, 하느님과 영성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 실천인 사랑, 이웃에 관한 관심, 연대와 화합, 포용, 협력, 나눔입니다. 영성과 결합할 때 모든 것이 온전해집니다. 정의 또한 영성 속에서 피어나야 사랑과 행복을 열매 맺습니다. 물론 욕심을 절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와 사회를 치유합니다. 이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어떤 의사 선생님의 글을 인용합니다.

 

“완벽한 건강을 추종할 때, 질병은, 장애는, 늙음은 부담으로 전락하고 인간은 초라해지며 마침내 죽음으로써 모두 실패자가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실존적 당위는 완벽한 건강이나 질병과 장애의 박멸이 아니라 본질적 불완전성과 함께 온존하기 위한 존재들의 끝없는 연대가 돼야 한다. 건강은 없다.”(신영전의 ‘세상 읽기’ 중 ‘건강은 없다’, 한겨레 2019년 10월 16자)

 

“하느님의 뜻과 상반되고 이웃의 선익에 어긋나는 행동과 태도들, 또 그러한 행동들에서 비롯되는 구조들은 오늘날 두 가지 범주로 나타난다. 한편에서는 이득을 위해 무엇이든 소모하는 욕망이며, 다른 편에서는 자기의 의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부과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오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다.”(「간추린 사회교리」 119항)

 

[가톨릭신문, 2021년 3월 7일,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사목국 성서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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