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과정의 중요한 형태와 환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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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1-04-12 | 조회수2,192 | 추천수0 | |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과정의 중요한 형태와 환경 (1) “선교 활동, 예비신자 교리교육 활동, 사목 활동, 세상 안에서의 현존과 활동”
교회의 복음화 사명은 ‘개인적 활동’만으로 수행될 수 없습니다. 복음화를 위해서는 ‘교회의 공동체적 활동’ 안에 적합한 형태와 환경이 조성되고 거기에 예수님의 마음이 녹아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형태와 환경 안에서 복음화 활동이 더욱 역동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교리교육 총지침」에서는 복음화의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복음화 과정은 다음과 같이 단계별로 또는 ‘중요한 시기’에 이루어진다. 비신자와 종교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 활동, 복음을 선택한 사람들과 입문 교육을 마치거나 보완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초기 교리교육 활동, 성숙한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교 신자를 대상으로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 펼치는 사목 활동. 그러나 이러한 시기들은 한 번만 있는 것이 아니며, 개인이나 모든 공동체의 영적 성장과 비례하여 복음을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경우 되풀이 될 수도 있다.”(「교리교육 총지침」 49항)
이제 복음화 과정에 대하여, 위에서 언급한 “선교 활동” “예비신자 교리교육 활동” “사목 활동”이라는 틀을 바탕으로 그 의미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교회가 이 세상 안에서 어떻게 현존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런데 복음화 과정의 단계들을 살펴보기에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가르쳐주신, 복음화 과정 중 일어나는 활동의 근본정신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풍요로운 우정으로 꽃피우는 하느님 사랑과 만남으로써, 또는 그 사랑과 새롭게 만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고립감과 자아도취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더욱 인간다워질 때, 곧 우리 자신을 벗어나 우리 존재의 가장 완전한 진리에 이르도록 이끄시는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길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인간이 됩니다. 바로 여기에 복음화 활동의 원천이 있습니다. 따라서, 삶의 의미를 되찾아 주는 사랑을 받았는데, 어떻게 이 사랑을 다른 이들과 나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복음의 기쁨」 8항)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복음화의 사명이 ‘개인의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임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촉구하시며 설명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최초의 가장 위대한 복음 선포자’이십니다. 모든 복음화 활동의 수위권은 언제나 하느님께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어 당신께 협력하게 하시고 성령의 힘으로 우리를 이끌고자 하십니다. 진정한 새로움은 하느님께서 몸소 신비로운 방식으로 만드시고 영감을 주시고 일으키시며 인도하시고 또 수많은 방식으로 동행하시는 새로움입니다.”(「복음의 기쁨」 12항) [2021년 4월 11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과정의 중요한 형태와 환경 (2) 선교활동 I
복음화 과정 안에서 일어나는 첫 번째 중요한 자리는 ‘선교활동’입니다. ‘선교’(宣敎)는 라틴어 mittere(보내다, 파견하다 / 명사형 missio, 파견)라는 어원에서 나왔으며, 하느님께 받은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파견된다는 의미입니다. 성 바오로 6세의 교황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에서는 선교의 의미를 복음화의 사명과 연결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교회로서 복음 선교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더 넓은 지역에서 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것만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의 초점, 사상의 동향, 사상의 원천, 생활 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역전시키고 바로잡는 데 있다고 하겠다.”(「현대의 복음 선교」 19항)
이러한 의미에서 선교활동은 세례받은 모든 사람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수행하는, 복음화를 위한 노력입니다. 그러므로 복음화의 주체는 선교활동을 수행하는 하느님 백성 모두입니다.
“하느님 백성의 모든 구성원은 그들이 받은 세례에 힘입어 선교하는 제자가 되었습니다(마태 28,19 참조). 세례받은 모든 이는 교회 안의 역할이나 신앙 교육의 수준에 상관없이 복음화의 능동적인 주체입니다. 따라서 복음화 계획은 전문가들이 수행하는 것이고 나머지 신자들은 그저 수동적인 수용자라고 여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복음화는 세례받은 모든 이의 주도적인 참여를 촉구하고 있습니다.”(「복음의 기쁨」 120항)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처럼 선교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일부 사람들만의 몫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을 만난 신앙인 모두가 바로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에 우리 각자 자신은 복음화의 사명에 스스로 참여하여 ‘선교하는 제자’가 되도록 요청받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기쁨」 120항 참조)
「교리교육 총지침」에서도 ‘선교활동’에 대해 복음화의 사명과 연결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복음화는 사랑으로 추진되며, 모든 현세 질서에 스며들어 그것을 변화시키고, 모든 문화를 자기 것으로 삼아 새롭게 한다. 그리스도인을 특징짓는 새로운 존재 방식과 삶의 방식을 사람들에게 증언한다. 최초의 선포를 통하여 복음을 명쾌하게 선포하고 회개로 초대한다.”(「교리교육 총지침」 48항)
이제 다음 시간에는 복음화의 중요한 단계로서의 선교활동이 ‘하느님의 현존, 복음의 증거와 최초의 선포’를 통해 어떠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021년 4월 18일 부활 제3주일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과정의 중요한 형태와 환경 (2) 선교활동 II
지난주에는 선교활동이 복음화의 과정 안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주는 선교활동에서 참된 증거와 선포의 중요성에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선교는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현존에 대한 증거와 선포는 그분 말씀을 만나는 이들의 마음을 열어줍니다. 또한 그들과 대화하고 친교를 맺는 과정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선하신 분’이라는 사실이 전달됩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복음을 증거하는 이들을 통해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새 교리교육 지침서」 33항 참조). 이러한 ‘복음의 증거’에 대해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현대의 복음 선교」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
“복음은 무엇보다도 증거로써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 또는 몇 사람이 그들의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면서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그들과 함께 삶과 운명을 공유하고, 모든 고귀하고 선한 것을 위하여 결속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해 봅시다. 또한 그들이 단순하고 꾸밈없이 현세 가치들을 초월하는 가치들에 대한 믿음과, 보이지 않고 상상할 수도 없는 것에 대한 희망을 드러내 보인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러한 무언의 증거를 통하여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어째서 저 사람들은 다르며 왜 저렇게 사는 것일까? 누가 그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시키는 것일까? 왜 그들은 우리 가운데 사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증거는 이미 기쁜 소식을 말없이, 그러나 매우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복음화는 바로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와 같은 의문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 세례를 받았으나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 명색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지만 그리스도교의 원칙에 따라 살지 않는 사람, 힘들게 무엇인가를 또는 누군가를 찾고 있지만 그 존재는 느껴도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첫 의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증거로 더욱 심오하고 더욱 절박한 의문들이 제기될 것입니다. 그러한 증거는 현존과 나눔, 연대를 내포하며, 복음화의 본질적인 요소이자 일반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현대의 복음 선교」 21항)
복음화는 하느님 말씀을 증거하고 그 말씀이 왜 기쁨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지를 ‘선포’하면서 진행됩니다. 여기서 ‘최초의 선포’(첫 선포)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구원하시고자 당신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날마다 여러분 곁에 사시면서 여러분을 깨우치시고 힘을 주시고 자유롭게 해 주십니다.”(「복음의 기쁨」 164항)라는 첫 선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앞으로 계속해서 울려 퍼져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성령께서 “그리스도에 관하여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 세례를 받았으나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 명색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지만 그리스도교의 원칙에 따라 살지 않는 사람, 힘들게 무엇인가를 또는 누군가를 찾고 있지만 그 존재는 느껴도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데 있어 중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의무를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쁨을 나누는 사람, 아름다운 전망을 보여주는 사람, 그리고 풍요로운 잔치에 다른 이들을 초대하는 사람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개종 강요가 아니라 ‘매력’ 때문입니다.”(「복음의 기쁨」 14항) [2021년 4월 25일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과정의 중요한 형태와 환경 (3) 예비신자 교리교육 활동
이제 복음화 과정의 중요한 단계인 ‘예비신자 교리교육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아직 하느님의 말씀과 만나지 못한 예비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신앙의 성장은 하느님의 말씀이 한 사람의 인격과 만나 지속적인 성장과 회개의 과정을 거칠 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교리교육 총지침」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신앙은 신자들의 마음속에서 자라나게 되어 있는 선물이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는 것은 평생 동안 끊임없이 회개의 과정을 밟는 것이다. 신앙의 길에 들어선 사람은 점점 자라 어른이 되는 갓난아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충만함 안에서 성숙하고 ‘완전한 사람’이 되고자 지향한다.” (「교리교육 총지침」 56항)
지난 시간에 이야기하였던 ‘첫 선포’(최초의 선포)는 어느 한 사람이 ‘복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는 마중물 역할을 합니다. 특별히 예비신자 교리교육의 여정 안에서 예비자들이 ‘첫 선포’를 받아들이고, 이에 응답하며 ‘초보적인 회개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첫 번째 발걸음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가는 데 있어 근본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이제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예비자들은 그분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하고, 복음 말씀을 통해 우리가 ‘고백’하여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차츰 알아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맡긴 신자들에게는 그분을 더욱 깊이 알고 그분을 닮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교리교육은 그들에게 신앙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고 그리스도교 생활을 터득하게 함으로써 영적 여정으로 이끌어 ‘사고와 행동의 점진적 변화’를 가져온다. 이것은 희생과 도전뿐 아니라 하느님께서 풍부히 내려 주시는 기쁨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그러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는 분명하고 생생하며 풍부한 열매를 맺는 신앙 고백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교리교육 총지침」 56항)
그러므로 예비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한 ‘신앙고백’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를 받을 때 하는 ‘첫 신앙고백’은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아가야 할 “영적 건물의 토대”(「교리교육 총지침」 56항)일 뿐입니다.
복음화가 예비신자 교리교육 활동을 통하여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예비자가 최초의 복음선포로 신앙을 갖게 되며, 이후 교리교육을 통해 거듭 회개하고, 지속적인 신앙교육으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총체적인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복음화의 과정에서 예수님의 발자취를 걸어가는 우리 모두는 아래와 같은 초대를 받습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2021년 5월 2일 부활 제5주일(생명 주일)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과정의 중요한 형태와 환경 (4) 사목 활동
이번 시간은 복음화를 지탱하는 중요한 사목 활동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사목(司牧)이란 무슨 뜻일까요? 가톨릭 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목은 어원적으로 목자(牧者)란 단어에서 나왔으나 그 성서적 의미는 마치 양을 치는 목자가 양떼를 돌보듯이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보살핀다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 […] 사목이란 교회의 본질적 사명에서 나오는 ‘인간 구원의 봉사’(주교교령 35항) 활동이다. 과거에는 영혼을 보살피는 일을 사목이라 하여 이를 오로지 성직자의 임무로 보았으나, 오늘날에는 널리 ‘보편적 구원의 성사’(교회헌장 1항)인 교회가 세상과 관련을 맺는 모든 활동을 두고 사목이라 일컫는다.” (https://maria.catholic.or.kr/dictionary/term/term_view.asp?ctxtIdNum=1385&keyword=사목&gubun=01#)
그러므로 사목활동은 모든 성직자와 평신도가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파함’으로 교회 사명을 실천하는 움직임 전체를 가리킵니다. 사목활동은 교회의 내부(교회 공동체)와 외부(세상과의 대화에서 관계 맺는 모든 활동) 모두에서 이루어집니다.
특별히 ‘본당 사목구’는 복음화의 중요한 주역인 동시에,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는 구체적인 장소가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사목활동의 중심이 되는 본당 사목구의 의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십니다.
“본당은 그 지역에서 사는 교회의 현존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인 생활이 성장하는 장소이며, 대화와 선포, 아낌없는 사랑 실천, 그리고 예배와 기념이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이 모든 활동을 통하여 본당 사목구는 그 구성원들이 복음 선포자가 되도록 격려하고 교육합니다. 본당 사목구는 공동체들의 공동체이고, 길을 가다가 목마른 이들이 물을 마시러 오는 지성소이며, 지속적인 선교 활동의 중심지입니다.” (「복음의 기쁨」 28항)
이러한 의미에서 본당 사목구(교회 공동체)는 세상과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교회 공동체 구성원 모두는 하느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을 통하여 선포하는 사명을 이해하고 이를 세상 안에서 봉사하는 ‘선교 활동’으로 이어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백성 모두가 각자의 삶 속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빛과 생명을 가장 필요로 하는 바로 그곳에”(「복음의 기쁨」 30항) 전하는 것, 그것이 복음화의 과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목활동의 본질입니다.
사목이란 말은 교회가 세상과 깊이 연대하는 데 역할을 수행하는 우리 신앙인의 사명을 알려줍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 백성인 우리가 일상 안에서 마주하는 구체적 현실에서 하느님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성찰하도록 이끕니다.
그러므로 사목활동은 교회가 세상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사목헌장 1항)를 끌어안고 공감하려는 복음화의 핵심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21년 5월 9일 부활 제6주일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과정의 중요한 형태와 환경 (5) 세상 안에서의 현존과 활동
복음화의 사명을 더욱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회 활동이 ‘세상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존재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화는 하느님 나라를 우리 세상에 현존하게 하는 것”(「복음의 기쁨」 176항)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복음 말씀은 교회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모든 계층에까지 기쁜 소식을 전해주며” “인류를 내부로부터 변화시켜 새롭게 하는”(「현대의 복음 선교」 18항)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힘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사회 안에서 복음 말씀을 증거하며 뿌리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입니다.
교회가 세상 속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일은 ‘인권 증진, 사회와 정치 활동, 교육과 문화 활동, 평화 증진, 환경 보전’ 같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은 교회가 모든 인류에게 진정으로 봉사하고자 하는 지향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복음적 선택은 사회 발전과 인간 해방을 위해 인간이 되어 스스로 낮아지셨던 하느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사회적 차원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개별 인간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도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모든 사람 안에서 활동하고 계심을 믿는 것은 성령께서 모든 인간의 상황과 모든 사회적 관계에 파고 들어가려 하신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의미입니다.”(「복음의 기쁨」 178항)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에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인간을 해방하는 것’, 다시 말해 이웃을 향한 연민과 사랑 그리고 그들을 이해하고 돕기 위한 마음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마태 25,40)이라는 말씀을 마음에 품고, 어려움에 마주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 ‘봉사의 몸짓’을 행하며, 그렇게 하느님 사랑에 구체적으로 응답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 안에서 현존하고 자라고 있음을 선포하는 동시에, 우리가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사회적 차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복음과 개인적 사회적 차원의 구체적인 인간 생활의 지속적 상호작용을 고려하지 않는 복음화는 완전할 수 없다.”(「현대의 복음 선교」 29항)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에서 다스리시는 그만큼, 사회생활은 보편적인 형제애, 정의, 평화, 존엄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선포와 삶은 사회에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찾고 있습니다.”(「복음의 기쁨」 180항) [2021년 5월 16일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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