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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123: 성체성사 1(1322~1332항​)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6-13 조회수1,491 추천수0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123. 성체성사 ①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22~1332항)


음식과 양식의 차이점

 

 

영화 ‘웰컴투 동막골’(2005)에서 기억에 많이 남는 대사가 있습니다. 첩첩산중 동막골에 숨어든 북한군 지휘관은 어떻게 그 동네 사람들이 촌장을 그리도 잘 따르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촌장에게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촌장의 대답은 단순했습니다.

 

“잘 먹여야지, 뭐!”

 

너무도 단순하고 명확해서 할 말을 잊게 만드는 대답이었습니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삽니다. 그런데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모기가 먹는 피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성체 성혈은 차이가 있습니다. 둘 다 생명을 위한 ‘음식’이기는 하지만 모기는 빼앗아 먹는 것이고 성체 성혈은 받아먹는 ‘양식’입니다. 다시 말해 양식엔 사랑이 담겨있고 음식엔 사랑이 담겨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음식과 양식이 주는 열매는 무엇일까요? 음식은 육체를 살리지만, 양식은 영혼도 살립니다. 음식만 먹는 것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사랑도 받아야 줄 수 있기에 모기처럼 처음부터 남의 것을 빼앗아 먹는 삶을 살면 사랑할 줄 몰라 무리가 형성되지 않는 것입니다. 모기 공동체라 하지 않고 모기떼라고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하지만 고등동물이 되어가면서 양식을 먹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고등동물이 되면서 어미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어미는 자신의 사랑이 섞인 양식을 새끼들에게 제공합니다. 이 양식을 먹으면 그 새끼는 어미가 사는 무리에 속할 사랑의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늑대에게 키워져 발견된 아말라와 카말라는 늑대 수준의 사랑이 담긴 양식을 먹었기에 자신을 늑대로 믿고 늑대 수준의 무리에 속할 수 있는 능력만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랑할 수 없으면 공동체를 형성할 수 없는데 각 공동체에 속한 사랑의 능력을 지닌 부모가 양식을 통해 자식을 자신이 속한 공동체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나 동물이 태어나면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일까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두려움’입니다. 이 두려움은 ‘자유’라는 능력에서 비롯됩니다. 높은 절벽 위에 서 있는 사람은 떨어질까 봐 두렵습니다. 떨어져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자기가 뛰어내릴 수 있는 ‘자유’가 있으므로 두려운 것입니다. 이 근원적 두려움을 해결해 주는 것이 ‘양식’입니다.

 

동물이든 인간이든 양식을 먹으면 그 부모에게 ‘순종’하게 됩니다. 빼앗아 먹는 음식과 다르기에 ‘감사’의 마음이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양심의 작용을 통해 받아먹었으면 고마워서라도 그런 사랑을 주는 상대에게 자신의 자유를 봉헌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이를 통해 부모에게 배우게 되고 순종하게 되면서 부모가 속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갑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아드님의 살과 피를 내어주시며 당신 나라 공동체에 초대하시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1324)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여섯 성사는 이 성체성사와 연결되어 있고 성체성사를 위해 존재합니다.

 

삶의 에너지는 ‘감사’입니다. 감사는 양식을 먹을 때만 생겨나는 감정입니다. 모든 동물은 그 감사의 양식을 주는 분을 위해 살아갑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감사의 에너지를 넣어주시기 위해 아드님을 양식으로 내어주셨습니다. 따라서 성찬례를 ‘감사제’(Eucaristia)라 부릅니다.(1328 참조) 부모가 주는 밥에 감사하는 마음이 솟구치지 않는다면 부모의 뜻을 따라줄 의욕이 생기지 않듯, 성체를 영하며 감사의 찬양이 나오지 않는다면 성체성사의 참 효과를 잃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리교육’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집이 가난하여 일주일 동안 라면만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 손과 발의 굳은살을 보고는 그 라면이 부모의 살과 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라면만 주어도 감사가 솟아 나왔습니다. 음식이 양식이 되려면 그 양식을 준비하기 위해 흘린 부모의 피땀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부모에게 감사하고 순종하게 됩니다. 우리는 교리교육을 통해 우리가 받아 모시는 천상양식 안에서, 하느님의 수난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미사(Missa)를 통해 그분께 순종하는 삶으로 파견(missio)됩니다.(1332 참조) 하느님께 순종하는 삶이란 나도 이웃을 위해 ‘양식이 되어 주는 삶’입니다.

 

[가톨릭신문, 2021년 6월 13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죽산성지 전담 겸 영성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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