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123. 가치에 대한 성찰 - 올바른 희망이란 무엇일까 (10) 용기와 희망(「간추린 사회교리」 517항)
희망이 계속되기 위해 우리는 세상의 다리가 돼야 합니다 “지상의 삶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동물처럼 그저 하루하루를 별 의미 없이 살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눈과 우리 머리가 하늘을 향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2000년 전부터 우리 가운데 머무르고 계신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그분은 가슴을 창으로 찔렸는데도 우리 모두를 품에 안으시려고 팔을 넓게 벌리고 계십니다.”(크리스티안 펠트만 「요한 23세, 그의 사랑 그의 삶」 중) 희망을 완성하는 용기 참된 희망이란 바른 양심을 바탕으로 건강해야 하며, 또한 식별돼야 하고 연대와 존중, 형제애, 이웃사랑을 통해 누군가에게 책임감 있게 전해져야 함을 살펴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희망은 하느님 안에 머물며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습니다. 바로 용기입니다. 용기는 성령의 은사이기도 하며(이사 11,2) 4추덕 중 하나입니다. 용기란 하느님의 가르침과 선을 행하게 하는 동력이라고 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837항) 진리를 증거하는 순교도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며, 유혹과 두려움을 물리치는 것도 용기이고, 불의함에 저항하는 것도 용기입니다. 「간추린 사회교리」에서도 중요한 일을 수행할 때 필요한 덕목이 용기라고 가르칩니다. 폭력과 억압에 맞설 때 필요한 힘이며(514항), 어렵고 힘든 상황에 필요한 능력이라고 합니다.(343항, 517항 참조) 요컨대 용기란 사람이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기 위해 그의 의지를 견고하게 해주는 신앙의 선물이며, 이 용기를 통해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양심에 따라 살 수 있고, 정의와 선, 진리에 따라 살게 됩니다.(고(故) 정진석 추기경 「성숙한 신앙생활」) 하느님의 선물인 용기 용기가 발휘되는 여러 경우를 봅니다. 부조리함에 저항하고 유혹이나 협박에 굴하지 않으며, 누군가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희생하는 모습들입니다. 나아가 자신의 무지함과 부족함을 고백하는 것도 용기이고, 책임과 허물을 인정하는 것도 용기이며 잘못된 일과 관행을 바로잡는 것도 용기가 될 수 있겠습니다. 이뿐입니까? 힘든 상황에서 신앙을 지키는 것도 용기이고, 없는 살림에도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들의 헌신, 자식을 먹이기 위해 자신은 수저를 들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들도 큰 용기입니다. 그 옛날 가난한 삶 속에서 어린 동생을 업고서 동네방네 밥동냥을 다니던 누이들의 용기는 참으로 눈물겨운 모습이지요. 이처럼 용기의 공통점은 두려움에 맞서며, 헌신하고 희생한다는 것이며 그 목적은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목적인 선함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용기는 만용과 무모함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만일 이런 용기가 사라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희망이 없는 사회, 모든 선함이 사라진 세상이 아닐까요? 그러니 용기는 사람을 아름답고 위대하게 만들며,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세상을 더 좋게 만들어가는 성령의 선물이자 덕과 힘이 분명합니다. 희망과 용기는 언제나 함께! 교황님을 지칭하는 ‘Pontifex’라는 말이 ‘다리를 놓은 사람’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하지요. 다시 말해 중재하고 화해시키며 끊어지고 단절된 희망을 이어주는 역할을 뜻합니다. 희망이 계속되기 위해 누군가 그처럼 용기 있게 다리가 돼야 합니다. 용기는 희망과 늘 함께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그런 용기와 희망 속에서 다리 같은 존재가 돼 왔습니다. 불의한 현실에 저항하고,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돌보며 예언자적 소명을 외쳐 왔고 그런 모습은 오늘날에도 절실히 요청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저항해야 하는 대상은 용기를 희미하게 하고 희망을 사라지게 하는 것들입니다. 무관심과 혐오, 이기심, 증오와 미움입니다. 이에 맞서지 않으면 우리는 금세 욕심과 이기심에 빠지고 삶은 허무해지고 모든 것은 본래의 의미와 기쁨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용기를 통해 우리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책임감 있는 좋은 사람이 돼 가며 그 안에서 성장하고 이웃과 세상, 우리 모두를 향한 희망을 이어갑니다. 희망은 계속돼야 합니다. 우리 모두 용기를 간직합시다. “I’ll take your part. Oh, when darkness comes. And pain is all around.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ll lay me down.” (제가 당신 편에 서 드릴게요. 어둠이 몰려와 주위가 온통 고통으로 가득찰 때 제가 험난한 물살 위에 다리가 되어 드리겠어요.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Garfunkel) ‘Bridge over troubled water’ 중) [가톨릭신문, 2021년 6월 13일,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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