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교리] ‘나에게’ 성체성사란 무엇인가? ‘처음’이란 단어는 긴장감과 두려움 그리고 새로움과 설렘이란 서로 다른 것을 동시에 전해주는 마법과도 같은 말이다. 고사리 손으로 예수님의 몸을 처음 받아 모시는 첫 영성체와 새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처음 축성하는 첫 미사는 긴장과 설렘으로 마음과 몸의 떨림이 가득하지만, 동시에 경건함과 기쁨으로 충만한 복된 시간이다. 다만 무거운 돌을 한 번은 거뜬히 들 수 있지만, 계속해서 들고 있기란 힘든 것처럼 성체를 처음 모시고, 축성할 때의 ‘첫 마음’을 간직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나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자. ‘나에게’ 성체성사란 무엇인가? 가톨릭 교회는 미사 때 사제의 축성으로 빵과 포도주가 형상은 그대로이지만,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실제로 변화된다는 ‘실체변화’를 믿을 교리로 선포했다. 실체변화 교리에 대한 신학적 용어와 의미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실 교회가 강조하는 점은 너무나 단순 명료하다.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 유언에 따라(마르 14,22-24) 미사 때 이뤄지는 성체성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단지 상징이 아니라, 참으로 현존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은 성체성사 안에 뿐만 아니라 성경 말씀 안에, 교회 공동체의 기도 안에, 그리고 다른 성사들 안에서도 계신다. 다만 예수님의 현존은 성체성사 안에 “전적으로 또 완전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373-1376 참조).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영성체(communio - 친교) 예식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는가. 먼저 성체를 영적 양식으로 여기며 정성된 마음으로 ‘영’(領 - 받는다)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성체를 모신 다음 주님과 일치하고 하나 되는 ‘친교’의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예수님은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요한 15,4). 라고 약속해주셨다. 우리는 성체를 통해 내 안에 머물러 계시는 주님께 삶이 건네주는 무거움과 어두움을 드러내고, 다시 주님과 함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고 출발할 수 있는 영적인 힘과 도움을 청해야 한다. 예수님의 온 생애는 사랑의 역사였다. ‘사랑’ 때문에 탄생하셨고, 또 같은 이유로 십자가 죽음까지 겪으셨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남겨주신 가장 큰 가르침 역시도 ‘사랑’이었다(요한 13,34 참조). 이렇게 예수님이 ‘먼저’ 보여주시고, 사셨던 끝없는 사랑은 성체성사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분은 정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쪼개지고, 부서지며, 당신의 모든 것을–그것이 생명이라도 – 기꺼이 내어주시는 “생명의 빵”(요한 6,34)이시다! 더욱이 예수님은 성체성사의 표징인 ‘빵’(밥)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신다. 빵은 구약의 만나처럼 신기하거나 특별하지 않고, 우리의 일상 어디에서나 쉽게 찾고 구할 수 있다. “살아 있는 빵”(요한 6,51)이신 주님은 어떤 휘황찬란함 속에서가 아니라, 매일 미사가 거행되는 ‘지금 여기에서’ 만날 수 있는 분이다. 이 신앙의 신비에 대해 우리는 지금 얼마나 의식하고, 놀라워하며 그리고 감사하고 있는가. 다시금 물어보자! 나에게 지금 성체성사는 무엇인가? [2021년 6월 27일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윤태종 토마스 신부(팔봉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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