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삶] 신앙인의 일상인 사회교리 (1) 여러분은 사회생활을 하고 계시나요? 달리 질문드려 보겠습니다. 사회생활 없이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가요? 우리의 일상은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며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 가톨릭 사회교리입니다. 제가 전에 소임 했던 기관에서 요청이 있어 두캣이라는 책을 교재로 하여 직원들의 사회교리 공부 그룹을 담당한 적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사회 이슈를 교회의 가르침이라는 시각으로 어떻게 볼 것이며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은 또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숙고하는 작업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거듭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사회교리는 행함에 대한 계속적인 자극과 독려가 이어지는 까닭에 머리나 가슴으로만 접하는 것은 수월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도 끊임없이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가톨릭교회의 교리는 믿을 교리, 지킬 계명, 은총을 얻는 방법 등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사회교리는 이 중 실천에 대한 부분인 지킬 계명에 관하여 다루며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3편 그리스도인의 삶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사회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개인과 조직이 가톨릭 신자라는 신원에 합당한 길을 찾는 원리와 방향을 제시해 주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사회교리를 한다 할 때 알게 되는 사회교리의 획기적인 기원은 1891년 교황 레오 13세가 반포한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과 노동의 의미, 교회의 역할, 국가 정부의 역할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현대사 속에도 고 전태일 등 시민운동가들의 노동 여건 개선을 위한 희생과 노력이 있었습니다. 더욱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교구의 고 지학순 주교님께서도 전 생애 동안 사회정의를 위해 헌신하신 분입니다. 정치의 대상은 정치인이 아닙니다. 직접 뛰는 몫은 정치인이 해야 하지만 정치의 대상인 모든 국민은 정치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주목하고 감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일부 신자분들은 신부님들이 강론에서 시사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을 무척 꺼립니다. 그러나 사회교리에 입각해서 시대와 사회현상을 조명하는 것은 말씀 선포 못지않게 중요한 사목자의 임무입니다. 사회교리는 가정, 생명, 성,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노동, 인권, 경영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 문제들을 복음의 정신에 따라 식별하고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추구하고 지켜야 할 신앙의 원리들과 윤리 기준, 가치관을 제시해 주는 ‘신앙인의 일상’입니다. 사회교리는 인간존엄성의 원리, 공동선의 원리, 연대성의 원리, 보조성의 원리라는 4가지 원리로 조명됩니다. 인간존엄성(Human Dignity)의 원리란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아 창조되었기에 동등한 존엄성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지닌 존엄성은 인간이 다른 사람 앞에서 갖는 존엄성과 평등의 기초가 되며 나이, 신분, 능력에 상관없이 침해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 스스로 목적이어서 그 효용으로 가치가 매겨지는 수단이 아니며 인간존엄성은 성취되거나 인간적 권세로 주어지거나 뺏거나 잃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공동선, 연대성, 보조성의 원리에 관하여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2021년 8월 8일 연중 제19주일 원주주보 들빛 3면, 박 마리로사 수녀(보건사목,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그리스도인의 삶] 신앙인의 일상인 사회교리 (2) 지난번 주보에서 가톨릭 사회교리는 사회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개인과 조직이 가톨릭 신원에 합당한 길을 찾는 원리와 방향을 제시해 주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모두는 가톨릭 신자로서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개인이 신앙인으로서 접하는 가깝고 먼 사회 문제들을 복음의 정신에 따라 식별하고 행동하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는데요, 이번에는 사회교리의 4가지 원리인 인간존엄성의 원리, 공동선의 원리, 연대성의 원리, 보조성의 원리 중 공동선의 원리에 대해 함께 살펴보시겠습니다. 공동선(Common Good)이란 인간의 기본권을 포함해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아무도 제외되지 않은 채 더욱 쉽고 충만하게 자기완성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모든 사회생활 조건들을 총칭하는 원리입니다. 공동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두가 함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재화의 올바른 분배와 이웃 사랑의 정신이 필수적입니다. 공동선은 사회가 존재하는 참된 이유이며 국가는 평화에 대한 노력, 국가 권력 기구, 건전한 사법 체계, 환경 보호, 모든 이에 대한 기본적인 편의 제공 및 음식, 주거, 노동, 교육, 문화와 교통, 기본적인 의료 혜택, 커뮤니케이션과 표현의 자유, 그리고 종교 자유의 수호와 같은 인간의 권리들을 보장하기 위해 올바른 정치 제도를 만들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 차원 외에 기업 차원에서 공동선을 추구하고 있는 사례 중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약회사인 머크(MSD, Merk Sharp & Dohme)사는 자사의 사명대로 인간의 생명을 위한 일을 해왔습니다. 1978년 머크사는 신약 ‘멕티잔’을 개발했는데 이 약은 강가의 모기나 혹파리를 매개로 하는 기생충 감염으로 시력을 잃는 병인 회선사상충증(river blindness; onchocerciasis)을 예방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병이 아프리카 지역의 풍토병인데다가 아프리카 주민들은 약을 구입할 돈이 없었으므로 약을 생산하는 것이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크사는 그동안 개발에 투자한 막대한 비용과 대량생산 비용을 감수하고 아프리카 주민들에게 무상으로 약을 배포하여 시력을 잃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머크사는 멕티잔 기부 20주년인 2007년 이후에도 회선사상충증의 퇴치를 위해 필요한 만큼의 멕티잔을 계속해서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머크사는 20여 개 조직과 협조체계를 구축하여 29개국 이상에 20억 달러에 달하는 멕티잔을 보급해왔고 매년 5천만 명 이상이 치료를 받고 4만 건의 실명을 예방하고 있습니다. 공동선을 이룬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람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명분이 필요하지 않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어제 누군가가 공동선을 위한 행보를 한 덕분으로 오늘 누군가는 그 영향권 아래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저나 여러분일 수도 있습니다. [2021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원주주보 들빛 3면, 박 마리로사 수녀(보건사목,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그리스도인의 삶] 신앙인의 일상인 사회교리 (3)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인들은 크고 작은 고통을 겪으면서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과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의 안녕과 안전은 다른 사람의 그것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체험했습니다. 전염병과 생존이라는 이슈만으로도 연대 의식이 절실한 시대인 것입니다. 연대성(Solidarity)의 원리는 개인들 간에 개인과 사회, 민족들 간에 상호 의존과 유대를 바탕으로 서로 책임을 지고 돌보아야 한다는 원리입니다. 연대성은 사회적 덕목으로서 모든 사람이 이웃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이웃과 자신을 위해 공동선에 투신하겠다는 강력하고도 항구적인 결의입니다. 아무도 소외됨 없이 모두가 함께 도와서 성장하기를 지향하고 개인이나 특정한 집단의 이해를 넘어 보편적 선익을 위해 헌신하려는 의지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정신을 따르는 자는 가난한 이들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들과의 공감과 연대 안에서 이들의 요구에 주의를 기울이고 식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연대성(連帶性)’의 사전적 의미는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성질,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같은 입장으로 더불어 결속하는 관계, 어떤 행위에 대해 두 사람 이상이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관계입니다. 우리는 크게 작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지만 일상에서 연대 의식을 지니며 산다는 것은 그리 단순하지도 쉽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저도 수도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동료 수도자가 친가족처럼 다가오기도 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는 형제애라는 말이 무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페 1.23 참조) 안에서 사람과의 연대로 구원의 여정을 이루고 계시다는 것을 새로이 인식하곤 합니다. 우리 각자는 현재 전 세계 모든 이가 함께하지 않으면 접근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물릴 정도로 언급되온 환경문제가 그렇고 네트워크를 통해 알게 되는 국가별 매일의 상황이 그러하며, 매년 월별로 바치는 교황님의 기도 지향도 대부분 그렇습니다. 공동으로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 앞에서 가장 던저 해야 할 일은 연대 의식을 지니도록 서로서로 독려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개개인의 힘은 미약하지만 함께 책임을 통감하며 뜻을 모아 연대하면 보다 크고 중요한 공동의 일도 함께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피를 흘린 분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용사들과 순국선열, 신앙의 자유를 선사해 주신 순교성인과의 연대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이분들의 행위의 결과는 후손대대에 필수적인 일상의 조건을 제공하고 의로운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분들과의 연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하느님의 의로움과 하느님의 나라를 찾는(마태 6,33 참조) 길이 됩니다. 하느님과의 연대와 우리 삶에 주어진 사람들과의 연대와 성인들과의 연대 속에서 공동선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힘을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2021년 8월 22일 연중 제21주일 원주주보 들빛 3면, 박 마리로사 수녀(보건사목,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그리스도인의 삶] 신앙인의 일상인 사회교리 (4) 동양과 서양의 문제 해결 방식이 다르다 합니다. 서양의 경우 문제에 직면해서 해결 방안을 구하는 것이 보편적이라면 동양의 경우 새 판 짜기의 접근방식으로 간다고 합니다. 동양인 우리나라에서는 갈등의 양상이 힘의 향배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가 생기면 정부를 찾고, 정부를 통해 방안을 찾지 못하면 실망의 소리를 내는 모습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보조성의 원리는 이러한 경우와 연관이 있습니다. 보조성(Subsidiarity)의 원리란 국가와 같은 상위 단체는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되 개인과 작은 단체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보조성이란 말은 마스트리히트 조약과 관련하여 가톨릭 사회교리를 거쳐 일반 정치 용어에 유입되었습니다. 가톨릭 사회교리가 구상하는 사회는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 층들은 서로 복잡한 관계에 있지만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하나의 전체로서 공동선을 향하도록 정렬된 것이어야 합니다. 개인의 창의와 노력으로 완수될 수 있는 것을 공동체에게 맡기는 것이 잘못인 것처럼 한층 더 작은 하위의 조직체가 수행할 수 있는 기능과 역할을 더 큰 상위의 집단에 맡기는 것은 불의이고 중대한 해악이며 올바른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이 됩니다. 결국 작은 단위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작은 공동체에서, 보다 큰 임무는 영향력과 권리가 주어진 상위 공동체에서 담당해야 할 것입니다. 보조성의 원리는 일상에서 가정과 학교, 직장, 교회 내 여러 단체에서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부모, 교사, 상사, 단체장 등 그것이 크든 작든 어떤 권한이나 힘을 행사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자기 수하에 있는 사람들을 아랫사람으로 여기거나 통제하려는 의도나 행동은 없는지 늘 깨어 살펴야 합니다. 나이나 서열, 지위와 계급, 경력, 신분 등을 내세워서 상대방에게 불편을 주거나 공용 금전을 집행하는데 있어서 형평성이나 공사 구분을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구성원들의 주체성, 창의성, 자율성을 키워주고 그들의 성장과 발전을 돕는 방향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서로 서로에게 형제님과 자매님이라는 호칭을 씁니다. 형제자매는 수평조직 또는 수평적인 공동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수직적인 형태의 교계제도를 포함하고 있지만 궁극적인 목적지는 주님의 말씀대로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마태 23.8).”입니다. 이것으로써 총 4회에 걸쳐 함께 바라본 ‘신앙인의 일상인 사회교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8월 29일 연중 제22주일 원주주보 들빛 3면, 박 마리로사 수녀(보건사목,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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