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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 안 상징 읽기: 마지막 심판 성화 속 백합과 칼의 상징성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11-02 조회수1,920 추천수0

[교회 안 상징 읽기] ‘마지막 심판’ 성화 속 백합과 칼의 상징성

 

 

중세기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가톨릭교회의 풍요로운 가르침을 절묘하게 녹여냈다. 그중에는 이 세상 끝날에 있을 마지막 심판을 주제를 한 작품들도 적지 않은데, 특히 15세기에 한스 멤링(Hans Memling)이 그린 3폭 제단화 ‘마지막 심판’이 손에 꼽힌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어떤 상징성과 의미를 읽어낼 수 있을까.

 

그림을 보면, 성자 그리스도께서는 중앙부의 크고 둥그런 아치, 곧 무지개 위에 앉아서 지구를 밟고 계시고, 그분의 입 오른쪽에는 백합(나리꽃) 줄기가, 왼쪽에는 불칼이 떠다닌다. 여기서 황금빛 무지개는 창조된 우주 만물을, 그리고 지구는 피조물의 세계에서 특별히 인간의 영역을 나타낸다. 무지개는 지구를 에워싸고 있는데, 이는 하느님께서 공의(公義)로운 분으로서 죄를 지은 인간들을 홍수로 벌하셨고, 그러나 자비로우신 분으로서 그 뒤에 노아와 계약을 맺으신 것을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 무지개 위에 앉으신 것은 성부 하느님께서 일찍이 인류 구원을 약속하셨고, 이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성자 하느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으며, 성자께서는 지상 생애와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써 하느님께서 맺으신 계약을 완수하셨음을 의미한다. 이제 그런 분이 지구를 밟고 계신 것은 그분이야말로 엄위하신 심판자이심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양옆에는 천사들이 그분 수난의 도구들인 십자가, 기둥과 채찍, 가시관, 망치와 못, 창과 신 포도주로 적신 해면 등을 들고 서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수난의 도구들로 인류의 구원을 이루어내셨다. 그러기에 천사들은 삼가 흠숭하는 마음으로 그것들을 손에 들고 그리스도의 주위를 둘러싼 것이다.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백합과 칼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들의 상징성이 15세기의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았다. 이를테면 마지막 심판을 주재하시는 최고의 심판자이신 그리스도의 오른쪽의 백합은 그분의 자비를 나타내고, 오른손 손바닥을 위로 보이게 하여 베푸시는 축복을 반영한다. 그분 왼쪽의 칼은 그분의 공의하심을 나타내고, 왼손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게 하여 내리시는 단죄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는 자비와 정의를 완벽하게 집행하시는 심판자시라는 것이다.

 

 

구원되는 이들과 단죄되는 이들

 

천사들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마지막 심판을 알리는 나팔을 분다. 백합과 높이 들어 올린 종려나무가 있는 곳에는 자비를 구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미카엘 대천사의 오른쪽에서는 푸른 옷을 입은 천사와 검은 옷의 악마가 한 영혼을 놓고 싸우는데, 싸움이 벌어지는 곳이 구원될 이들이 있는 쪽이기 때문에 싸움을 지켜보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자비가 승리할 것임을 확신한다. 세 폭 그림 중에서 왼쪽(사실은 그리스도의 오른쪽) 패널의 그림에는 선택된 이들을 위해 마련된 하늘나라의 입구가 보인다.

한편, 그리스도의 칼이 있고 그분의 손바닥이 아래로 향한 곳에는 단죄되어 절망하며 울부짖는 이들이 있다. 이곳에서는 정의가 모든 것을 압도하며 그래서 온통 황량하고 암담하다. 오른쪽(그리스도의 왼쪽) 패널의 구원된 이들에게 허락된 녹색 풀이 싱그러운 곳과는 대조적으로 헐벗은 갈색 맨땅이 보인다.

 

심판이 이루어지는 현장인 한복판에는 15세기의 갑옷 차림으로 무장한 미카엘 대천사가 서 있다. 왼손에는 저울을 들었는데, 이 저울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의 의로운 면을 좋게 평가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저울은 중세기에 심판 장면을 묘사하는 데 자주 사용되었는데, 이는 다니엘이 벨사차르 왕이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벽에 나타난 글을 보고 “임금님을 저울에 달아 보니 무게가 모자랐다는 뜻입니다.”(5,27)라고 풀이한 일화에서 유래한다. 중세기에는 의로운 사람의 영혼이 불의한 사람의 영혼보다 무게가 더 많이 나간다고 여겼다. 이렇게 한 사람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저울을 통하여 판명된다.

 

미카엘 대천사는 오른손에 보석으로 장식된 십자가가 달린 봉을 들고 서 있고, 그 왼쪽에서는 단죄된 영혼들이 몸부림치고 울부짖으며, 그리고 악마들에게 조롱을 받으며 자신의 운명, 곧 오른쪽 패널에 묘사되어 있는 지옥을 절감한다. 그들은 지옥에 떨어지도록 단죄됨으로써 생전에 자기들이 거부한 길, 진리, 생명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된다.

 

근현대에 들어서 이러한 장면들이 어린이들을 놀라게 할 수 있다고 보는 정서가 우세해졌고, 그리하여 그런 종류의 그림들은 박물관이나 개인 수장고에 숨겨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중세기에는 단테가 ‘신곡’에서 지옥을 묘사한 내용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멤링도 마찬가지로 그 영향을 받았다.

 

 

의로운 영혼들, 성모 마리아, 그리고 사도들

 

왼쪽 패널에서는 교황, 추기경, 주교의 인도를 받으며 천국의 문에 이르러 베드로 사도의 영접을 받는 의로운 영혼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이제 하늘나라에 들어가기에 앞서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하늘나라의 옷을 입는다.

 

마지막 심판 장면을 묘사한 중세기의 그림들에서는 종종 사람들의 벌거벗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성 혁명이 아직 대두하지 않은 시대에는 그러한 묘사가 부도덕하거나 외설적인 의미를 담은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중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죽어서도 벌거벗은 상태이며, 하느님께 심판받을 때는 현세의 법정에서 흔히 그러하듯이 자신에게 우호적인 판결을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복장이나 재물 없이 맨몸으로 그분 앞에 선다는 것을 알았다. 그 심판에는 오직 믿음과 착한 행실, 그리고 위대한 중개자이신 성모님께 대한 신심만이 중요했다.

 

시선은 다시 위로 돌리면, 중앙 패널 상단에는 주님의 어머니께서 오른쪽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는 모습이 보인다. 그분은 성인들에게 그 지역의 의상을 입히던 중세기의 관행에 따라 플랑드르 의상을 입으셨다. 그리스도를 둘러싼 12 사도들과 무릎을 꿇은 요한 세례자도 또한 영혼들을 위해 기도한다.

 

이 그림에 사도들을 개별적으로 나타내 주는 표장은 표현되지 않았어도 중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각각의 사도들을 쉽사리 알아보았다. 가령, 수염이 없고 머리가 갈색인 요한은 성모님 곁에 있고, 또한 수염이 없으며 주님 부활을 의심한 전력이 있는 토마스는 가슴에 손을 얹고 믿음을 고백하는 모양새다. 머리와 수염이 붉은 바오로는 요한 세례자 옆에 있고, 시몬은 머리와 수염이 은색이지만 이마가 넓게 벗겨졌으며, 마태오는 머리와 수염이 백발이되 머리숱이 많고 묵상하는 모습이다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만큼 사도와 성인들은 중세기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친척만큼이나 친숙했다. 중세 그리스도교 국가에서 인간은, 곧 그리스도인은 오늘날 세상이 진보와 더불어 안타깝게 잃어버린 하늘나라에 친밀함을 더욱 잘 느꼈다.

 

어느 면에서 중세기의 그리스도인들에 ‘마지막 심판’이라는 3폭 제단화는 한낱 걸작 예술품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교육학적인 측면에서 사람들에게 신앙의 진리를 가르친 커다란 업적이기도 했다. 중세기에는 옳은 것과 그른 것, 흰 것과 검은 것의 구분처럼 분명하게 착한 사람은 영원한 상급을 받고 악한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는 기준이 있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11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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