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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활교리: 사랑의 응답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11-13 조회수1,282 추천수0

[생활교리] 사랑의 응답 

 

 

영국의 화가 홀맨 헌트의 ‘세상의 빛’이란 그림은 곧잘 교리교육 예화에 사용되곤 한다. 언뜻 보면, 예수님이 어둠 속에서 등불을 들고 계속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평범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림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반전(?)이 일어난다. 바깥문 손잡이가 없어, 문은 오직 안에서만 열 수 있다! 아무리 예수님이 내 마음을 두드려도, 내가 응답하지 않고, 열어주지 않는다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인간의 침묵과 무응답 앞에서 주님은 나약해질 수밖에 없으시다.

 

2018년 전례력부터 바뀐 새 『로마 미사 경본』을 보면 사제의 성찬 제정과 축성 기도 부분에서 “모든 이를 위하여”(pro omnibus)는 “많은 이를 위하여”(pro multis)로 바뀌었다. 이 같은 결정은 라틴어 원문에 충실하기 위함일뿐더러, 최후의 만찬 때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 26,28; 마르 14,24 참조)라는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다. 하지만 곱씹어보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겪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특정한 인물이나 민족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해서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이로 태어나시고, 또 가장 보잘것없고, 버림받은 이들의 벗이 되어주었던 예수님에게 그 누가 소외되고 차별당하며 제외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본다면, “많은 이를 위하여”라는 표현은 구원의 은총이 ‘모든 이에게’ 무조건적으로 열려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의지와 참여 없이 일방적인 강요나 혹은 기계적인 방식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경신성사성, 2006.10.17. 참조).

 

성체 역시도 마찬가지다. 성체는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누구나가’ 모실 수 있는 주님이 주시는 사랑의 선물이다. 다만 그 선물을 받을 최소한의 준비는 필요하다. 단적인 예로, 교회는 갓난아기 역시 구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태어난지 100일을 넘기지 말고 유아세례 하기를 권고한다(『사목지침서』 제47조 참조). 반면에 구원의 양식인 성체는 최소한의 이해력과 사리판단이 이뤄지는 10살 전후가 되어야 하고(제82조 참조), 대세를 받은 이들 역시도 세례 보충 예식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성체를 받아 모실 수 있다(제55조 참조). 성체를 영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성체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와 믿음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체가 ‘그리스도의 몸’이요, “영원한 생명의 음식”(『가톨릭 교회 교리서』 1212항)임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찌 그 사람에게 성체를 영해 줄 수 있겠는가. 성체는 내 안에 모시기만 하면 순간적으로 마법을 일으키는 음식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주어지는 주님의 양식인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분명 미사 때 축성된 같은 성체를 모시고 있지만, 우리가 성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은총의 체험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성체를 아무런 의식 없이 습관적으로, 기계적으로 받아 모실 때와 정성된 준비와 간절한 지향 속에 받아 모실 때 어찌 내 마음이, 내 영혼이 똑같을 수 있겠는가. 성체는 분명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절정이다. 그러면 나는 그 사랑에 얼마나 열려있고, 응답하고 있는가!

 

[2021년 11월 14일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윤태종 토마스 신부(팔봉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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