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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령성월과 사말교리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11-23 조회수1,485 추천수0

[돌아보고 헤아리고] 위령성월과 사말교리

 

 

11월은 위령성월이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 특히 연옥 영혼들을 기억하며 기도와 희생을 바치는 달이다. 여기에는 사후의 영원한 삶과 행복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에 따르면 혼은 세 가지가 있는데, 생명을 낳고 자라게 하는 초목의 생(生魂), 사지와 몸체로 사물의 실정을 지각하게 하는 동물의 각혼(覺魂), 사물을 추론하여 이치와 의리를 분석하게 하는 사람의 영혼(靈魂)이 있다. 생명과 지각은 몸에 의지하므로 생혼이나 각혼은 죽으면 사라지지만, 추론과 분석은 몸에 의거하지 않으므로 영혼은 소멸하지 않는다. 이처럼 영혼은 불멸하므로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네 가지의 마지막 문제인 죽음, 심판, 천국, 지옥에 관한 사말교리(四末敎理)가 성립하였던 것이다.

 

사말교리는 천주교의 사대(四大) 교리인 천주 존재, 삼위일체, 강생구속, 상선벌악 중 선한 자는 상을 받고 악한 자는 벌을 받는다는 가르침과 직결되어 있다. 인간은 죽음 이후에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한 이는 천국으로 가고, 불완전하게 응답한 이는 하느님과의 온전한 일치를 위한 정화 과정인 연옥을 거쳐 천국으로 가며, 죽을죄를 뉘우치지 않고 부르심에 단호히 거절한 자는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말교리는 상선벌악과 아울러 하느님의 창조 목적과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한국 천주교회가 최초로 채택한 문답식 교리서인 『셩교요리문답』과 『셩교백문답』의 첫 대목에서 하느님이 인간을 만든 까닭과 인간이 하느님을 믿는 까닭은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천주를 공경하고 자신의 영혼을 구하여 사후에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얻게 하는 데에 있다고 천명한다.

 

박해 시기에 현세는 잠시 지나가는 풍진세계로서 눈물의 골짜기이자 귀양살이하는 곳이므로 눈앞의 부귀와 안락을 탐할 것이 아니라, 사후의 심판에 따른 영원한 삶을 염두에 두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현세보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무게 중심을 둠으로써 자연스럽게 순교 영성과 긴밀한 관련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신앙 선조들은 사말교리에 대한 믿음이 있었으므로 살아생전에 하느님 말씀과 교회 가르침을 힘써 배우고 깨우치고 실행하여 비신자들과 변별적인 삶을 살 수 있었으며, 살아서 다스리는 하느님을 증거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현세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추구하고 지향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즉 사말교리는 사후의 보상이나 징벌에 대한 기대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내세 중심적 · 미래지향적 가르침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복음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나침반이자 방향타 역할을 한 현세 중심적 · 현실 지향적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에서 드러나듯이 천국은 사후가 아니라 살아서 지금 여기서 맛볼 수 있다. 이를 현세에서 누리는 천국, 즉 생지옥과 대비하여 ‘생천국’이라 칭할 수 있다. 따라서 사후의 하느님 나라에 몰두하여 현세의 하느님 나라 건설을 소홀히 해서도 안 되지만, 현세의 하느님 나라에 집중하여 사후의 하느님 나라 완성에 대한 희망을 반감해서도 안 될 일이다. 최근에 주교회의에서 펴낸 『죽음 · 심판 · 지옥 · 천국 - 가톨릭교회의 사말교리」에서도 예전의 신앙 선조들이 믿었듯이 그리스도인은 완성된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나그네’이며, 현재의 삶은 ‘지상의 나그넷길’이라 밝히고 있다. 지상에서의 하느님 나라 건설과 천상에서의 하느님 나라 완성이 균형 있게 추구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인 것이다.

 

오늘날 사말교리를 구태의연하게 또는 허황하게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현대에 접어들면서 교회의 사회적 · 정치적 역할을 강조하는 사회교리와 해방신학이 부각됨에 따라 천상교회보다는 지상교회, 천상의 하느님 나라보다는 지상의 하느님 나라에 주안점을 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세 중심적, 물질 중심적, 육체 중심적, 찰라 중심적 사유가 팽배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진정한 본향과 정신적 가치와 영혼에 관심이 있는지, 또한 영원한 생명에 대한 열망이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하느님의 자녀이자 예수님의 제자로서 복음적으로 살다가 사후에 영적인 몸으로 부활하여 지복직관(至福直觀)을 누리고자 하는 믿음이 있는지 성찰해야 하는 것이다.

 

위령성월을 맞이하여 “교회는 초기부터 죽은 이들을 존중하고 기념하였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특히 미사성제를 드렸다. 그것은 그들이 정화되어 지복직관에 다다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032항)라는 가르침이 새롭다. 죽음은 영원한 생명에 있어서 삶의 한 매듭이고, 사후의 심판은 죄와 악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선의 승리이며, 천국은 하느님과 의인들이 이루는 영원한 친교이고, 지옥은 생명과 행복을 주는 하느님과 영원히 단절되는 것이라는 사말교리를 새삼 돌아보고 헤아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오늘도 성인들을 비롯한 죽은 이들과의 통공을 믿으며 ‘구원송’을 바친다.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 불에서 구하시고,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교회와 역사, 2021년 11월호(vol. 558), 김문태 힐라리오(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한국평협 기획조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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