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144. 병자성사 ② (「가톨릭 교회 교리서」 1514~1532항)
병이 치유되어도 치유되지 않아도, 병자성사 은총은 한결같다 죄가 많은 곳에 은총도 많습니다.(로마 5,20 참조) 죄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질병도 은총을 끌어당깁니다. 하지만 약국이나 병원에 가도 되는 정도의 병으로 병자성사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약국이나 병원도 주님께서 주신 은혜입니다. 그러나 성사를 통해 받는 은총이 약국이나 병원에서 주는 것과 비교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병자성사는 “환자가 질병이나 노쇠로 죽을 위험이 엿보이는 때”(1514)에 받는 것이 가장 적절합니다. 그래야 그 은총이 확연히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병이 낫지 않는다면 은총을 받지 못한 것일까요? 은총의 본래 목적은 구원이고 그 보상으로 육체의 치유도 뒤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병의 외적인 치유만 은총으로 여기는 사람에게 병자성사는 오히려 “하느님에 대한 실망과 반항”(1501)으로 흐르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미리내 천주성삼 수도회 임언기 신부가 임종 직전이던 어느 냉담교우에게 병자성사를 주러 갔습니다. 본인이 청한 것은 아니고 주위 신자들이 청했습니다. 병자는 이미 배에 복수가 차 있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죽음을 목전에 둔 간암 말기 환자였습니다. 사실 병자는 오랜 냉담을 하고도 병자성사를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신부님은 병이 중하여 말을 할 수 없는 줄 알고 일일이 십계명을 읊어주며 해당하는 것에 고개만 끄떡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병자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신부님은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를 거부하는 것에 대해 확신하고 방을 나섰습니다. 그때 신부님의 뒤에서 환자가 크게 소리쳤습니다. “나 죄 없어!” 이 환자는 병자성사와 함께 오는 내적 은총을 믿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병을 주신 하느님을 원망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질병은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께 돌아오게” 하는 도구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병자는 구세주의 속량하시는 수난을 닮음으로써 열매를 맺도록 축성되는 것입니다.”(1521) 병자성사를 통해 “병자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자유로이 결합하여, 하느님 백성의 선익에 기여합니다.”(1522) 이렇듯 병을 통해 우리가 먼저 기대해야 하는 은총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합치된 영혼의 내적 치유입니다. 이것을 먼저 바랄 때 육체적인 병의 치유도 자연스럽게 뒤따릅니다. 부산교구 김홍석 신부가 용호본당 보좌 때 겪었던 이야기입니다. 폐암 말기 환자의 병자성사를 갔는데, 환자는 이미 암세포가 머리까지 전이되어 사람도 못 알아보는 상황이었습니다. 혹시 성체를 보면 그 순간 정신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성체를 보여준 순간 신부님과 성체를 알아보는 것 같아서 성체를 드렸지만 이내 가래침과 함께 뱉어버렸습니다. 김 신부는 영대로 가래가 묻은 성체를 싸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성체를 땅에 묻으려고 생각했는데 오는 중에 수녀님이 자신이 영하겠다고 하는 것을 자존심상 뿌리치고 사제관으로 모시고 들어왔습니다. 한참 고민한 끝에 사제품 받을 때의 결심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약해진 자기 성체 신심을 탓하며 눈물을 흘리고는 그 성체를 영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심한 고열이 일고 24시간 동안 거의 혼수상태로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하루가 지난 뒤 290 이하로는 절대 떨어지지 않던 혈당 수치가 100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병자성사의 은총이 오히려 사제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김 신부가 육체적 치유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먼저 영혼의 내적 회복을 원했음을 보아야 합니다. 내적인 은총을 원했더니 생각지도 못했던 육체적 치유도 일어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병자성사는 내적 치유의 성사인 ‘고해성사’, 그리고 성령의 힘을 부어주는 ‘견진성사’, 또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성체성사’와 밀접히 관련됩니다.(1525 참조) 그리스도는 썩어 없어질 육체보다 영혼 구원에 더 관심 있으십니다. 모든 은총의 궁극적 목적은 결국 영혼의 구원에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병자성사로 외적인 질병이 치유되든 치유되지 않든 그 성사 자체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음을 의심치 말고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한 선익이 되도록 이끌어야겠습니다. [가톨릭신문, 2021년 11월 21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죽산성지 전담 겸 영성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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