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144. 복음과 사회교리 -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리 4,4) (「간추린 사회교리」 60항)
그리스도인들에게 기쁨이란 하느님 사랑으로 사는 것 베드로: 신부님, 너무 힘든 일만 많아서 그런지 기쁨이 없습니다! 마리아: 네가 뭔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지금 힘든 일이 있는 거 아닐까? 바오로: 원래 인생은 다 그런 거야! 고통과 시련을 통해서 큰다는 말 몰라? 루치아: 세상에는 까닭 없는 고통도 있기 마련이지.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거야! 스텔라: 힘들지만 기뻐지도록 노력해 봐! 성경에서도 늘 기뻐하라고 하잖아! 이 신부: 베드로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 보고 나서 함께 이야기 나눠 보아요! 여러분은 기쁘십니까? 오늘은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여러분들은 기쁘십니까? 기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또 무엇입니까?” 즐겁고 흥겨운 느낌이나 감정을 기쁨이라고 표현합니다. 만족감, 행복, 성취와 충족, 감사함이 기쁨의 주된 이유이며, 세속적 쾌락이나 재미를 통해 기쁨을 얻기도 합니다. 반대로 힘들고 고단한 상태를 기쁨으로 여기긴 어렵습니다. 기쁨은 삶의 질과 행복과 의미를 위한 중요한 지표입니다. 기쁨이 없으면 우리는 금세 불행해집니다. 그런데 가톨릭 신앙에서 이야기하는 기쁨의 의미는 심오합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기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쁨이란 하느님의 선물이며 그 내용은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이다. 이 기쁨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는 기쁨이며 우리 삶에 슬픔과 고통이 교차하듯 그리스도인의 기쁨에도 그것이 모두 포함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역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시련과 고난과 슬픔에서 결코 제외되어 있지 않으며 오히려 고통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에 참여하는 길이라 인식하고 현세의 고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삶의 한 부분으로서 고난 힘들고 어려울 때 고난과 역경을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갈래 길은 여기서 나옵니다. 어려움이 해결되면 하느님을 믿고,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을 원망하며 신앙을 저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듯한 이런 태도를 신앙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진정한 친구는 어려울 때 함께하는 친구라고 하듯, 진정한 가치와 삶의 소중한 것들, 사랑, 우정, 희망과 같은 덕들은 어려움 속에서 빛나고 탄생합니다. 그래서 가톨릭 신앙은 고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이를 삶의 한 부분으로 바라보라고 합니다. 그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함께 머무는 것입니다. 물론 일반적 의미의 고난과 개선해야 할 과제는 구분해야 합니다. 불의함으로 빚어지는 어려움과 누군가가 겪는 피해와 아픔은 언제나 자세히 살펴봐야 하고 적극적으로 시정되도록 함께 애써야 합니다. 또 이웃의 어려움을 내 일처럼 여기며 위로와 사랑을 나누는 것도 필요하지요. 요컨대 고난과 시련은 불가피하나 이를 신앙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고, 지나고 보면 어떤 의미와 뜻이 있음을 깨우치게 되듯, 그 속에서 지혜롭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 요청되며 잘 극복하기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함께 울고 함께 웃는 기쁨 기쁨도 여러 가지입니다. 그중에서도 ‘함께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웃을 친구로 여기는 인간존엄, 이웃의 어려움을 내 일처럼 여기는 연대와 협력, 약자의 처지를 보호하는 보조성, 재화의 나눔과 같은 사회교리의 원리들은 결국 함께 울고 함께 웃고자 하는 기쁨을 지향합니다. 그러므로 기쁨과 고난을 단편적 사건으로 보기보다, 우리가 나아갈 삶의 방향, 궁극적으로 얻고 지키고 간직해야 할 가치와 연결해서 바라보는 성숙한 시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신앙 안에서 성찰한다면 더 큰 행복과 기쁨을 체험합니다. 언제고 코로나19는 종식될 겁니다. 다만 우리가 그 시간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그리고 인간과 세상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을 인식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기쁨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고 깊으며, 항상 새로워지고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하느님의 좋은 선물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사도들, 많은 성인 성녀는 세상 한복판에서, 비록 시련이 닥칠지라도 항상 기뻐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것이 아닐까요? “인류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나누는 교회는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과 함께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게 되었고 계속해서 모든 사람 가운데에 현존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그들에게 선포한다.”(「간추린 사회교리」 60항) [가톨릭신문, 2021년 11월 21일,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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