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151. 복음과 사회교리 (「간추린 사회교리」132항)
정의로운 사회는 인간 존중을 바탕으로 실현된다 바오로: 신부님, 저는 평생을 가난한 노동자로 살았고 배운 게 없어 무식합니다. 강론을 들어도 못 알아들을 때가 많습니다. 죄송할 따름입니다. 혹시 다른 신자들에게 피해를 줄까 걱정돼 성당에 못 올 때도 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 신부: 형제님,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입니다. 같은 형제끼리 아버지의 집인 이 성당에서 높고 낮음이 어디 있습니까? 옛날에는 다들 사는 게 어려워 배움의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형제님 탓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배움의 기회를 허락하신 것은 더 사랑하고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하느님 앞에서 우리가 자랑할 지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제로서 제가 불편하게 해 드렸다면 오히려 저를 용서하십시오! 무엇이 중요한가? 존경하는 은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학생들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원칙이 분명하고 엄격하셨지만, 진심으로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학생들을 차별하거나 무시하지 않으셨고 믿음과 존중을 보여 주시며 소명 의식과 목표를 일깨우셨습니다. 현실의 경쟁과 낙오도 불가피하지만, 그 안에서 형제애와 사랑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시련과 절망에 빠질 때 은사님을 떠올리며 힘을 냅니다. 십 수 년이 지나 사제가 돼 교우분들을 대할 때 은사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어렵고 힘든 분들을 따뜻이 대해 줘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도 늘 가난한 사람임을 기억하려 합니다. 그럴 때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예수님 말씀을 깨닫습니다.(루카 6,20) 완고하게 하느님을 거부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움켜쥐지 않으면 하느님 안에서 평화를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존중을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가난을 특별하게 바라보았던 가톨릭교회의 오랜 전통 안에서 특별히 부제 성 라우렌시오와 성 바오로 6세 교황,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은 가난한 이웃이 교회의 보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가 어렵고 힘든 이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며 존중하고 형제로 대한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나아가 재물과 부유함, 재능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며 이를 가난한 이웃들과 나눌 때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뜻한다고 하겠습니다. 이웃 사랑이라는 신앙의 가르침은 인간 존중을 통해 구현됩니다. 「간추린 사회교리」에서도 인간 존중은 사회의 기본 바탕이자 많은 이들이 고대하는 것이며(5항), 정의와 평화를 이룩하게 하고(58항), ‘이웃을 네 몸처럼 아끼라’는(레위 19,18) 분명한 명령으로 그 중요함이 절정에 이릅니다.(112항) 누군가의 수고에 빚지고 사는 우리 현대사회의 화두는 물질적 번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많은 광고와 소비환경 속에서 물질의 혜택과 편리함이 끝없이 쏟아집니다. 잘 사용해 공동선과 선익을 위하면 좋겠지만, 자칫 이웃과 사회, 하느님께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면 안 되겠습니다. 서로 존중하는 성숙한 태도를 지녀야 하며, 힘든 이웃일수록 따뜻이 대해야 합니다. 문득 고단한 이웃을 생각하며 그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실상 우리는 이름조차 없이 고단하게 지내는 분들의 노동 덕분에 편하게 지냅니다. 공사판이나 힘들고 위험한 일터, 화장실, 춥고 더운 데서 계시는 분들, 대개는 배움의 기회나 유복함 없이 무관심 속에서 살아 왔거나 먼 해외에서 왔습니다. 몸이 불편한 분들, 연로하신 분들도 많습니다. 그분들에게 많이 미안합니다. 따스한 마음과 배려, 작은 것이라도 나누면 좋겠습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인간의 초월적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할 때에야 비로소 실현된다.”(「간추린 사회교리」 132항) [가톨릭신문, 2022년 1월 9일, 이주형 요한 세례자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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