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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 안 상징 읽기: 백합, 주님 탄생 예고와 주님 부활 상징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3-11 조회수1,964 추천수0

[교회 안 상징 읽기] 백합, ‘주님 탄생 예고’와 ‘주님 부활’ 상징

 

 

오래전부터 그리스도인들은 백합꽃(나리꽃)을 성모님의 정결과 죄 없으심을 상징하고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꽃으로 이해했다,

 

 

‘주님 탄생 예고’의 상징

 

7세기에 존자 성 베다는 백합꽃을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꽃으로, 순백색 꽃잎은 그분의 정결을, 수술의 황금색 꽃밥은 그분의 빛나는 영혼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그리고 12세기에 성 베르나르도는 성모님을 ‘겸손하신 제비꽃, 동정이신 백합꽃, 정결하신 장미꽃’이라고 일컬었다. 나아가, 중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의 정결을 가장 잘 나타내는 꽃으로 백합꽃을 꼽았다.

 

그래서 ‘주님 탄생 예고’를 그린 14세기까지의 그림들에서는 백합꽃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가브리엘 대천사와 기도하는 소녀 사이에는 백합을 심은 화분이 놓여 있곤 했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기 이후의 그림들에서는 화분에 심긴 백합꽃 대신 가브리엘 대천사가 백합꽃을 손에 든 모습이 많이 발견된다.

 

교회에는 이처럼 상징성 풍부한 백합꽃과 관련된 아름다운 이야기들 몇 가지가 전해 온다. 먼저, 백합은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날 때 흘린 눈물에서 솟아났다고 한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곧 성모 마리아가 몸을 굽혀 땅에 피어 있는 백합꽃을 집어 들었을 때까지는 꽃의 색이 흰색이 아니라 노란색이었다고 한다. 이는 저 옛날에 하와가 상실한 세상과 인류의 무죄무구(無罪無垢) 상태를 되돌려 놓은 데 새 하와로서 협조한 마리아의 역할을 말해 준다.

 

또한 한 유다인과 가톨릭 신자가 포도주병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서 성모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에 대해 논쟁한 이야기도 있다. 가톨릭 신자가 유다인에게 “백합의 줄기가 자라서 녹색을 띠고, 그런 다음에는 그 줄기가 손상되는 일 없이 흰색 꽃을 피우는 것처럼, 우리의 성모 마리아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셨고, 마침내 그분 육체의 동정성이 손상되는 일 없이 아들을 낳으셨으니, 우리는 그 아기가 곧 온 인류의 꽃이시요 최고의 열매시라고 믿지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유다인이 대꾸했다. “만약 내가 이 포도주병에서 백합이 돋아나오는 것을 본다면 믿겠지만, 그러기 전에는 믿을 수가 없군요.” 그 순간 포도주병에서 백합이 돋아나더니 이내 일찍이 본 적이 없던 아름다운 꽃까지 피어났다. 이 광경을 보고 유다인은 무릎을 꿇었다. “성모 마리아님, 저는 이제 당신이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셨음을, 그리고 당신은 잉태 전에도 출산 후에도 동정이심을 믿습니다.” 그 유다인은 즉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났지만, 화가들은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 성모님과 가브리엘 대천사 사이에 백합을 심은 화분이 놓여 있는 장면을 화폭에 담기에 이르렀다. 그리함으로써 마리아께서 구세주를 잉태하신 방식을 두고 한 유다인이 가톨릭 신자와 논쟁을 벌였던 것처럼, 소녀 마리아는 자신이 잉태하게 될 것이며, 그럼에도 평생 동정으로 남으리라는 천사의 전갈을 듣고는 천사에게 물어보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한 수도사가 백합과 관련된 기적을 보고 성모 마리아의 동정 잉태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게 된 이야기도 있다. 그 수도사는 이 의혹을 풀기 위해 성 에지디오를 찾아갔다. 성 에지디오는 굳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대신에 다만 한 가지 행위로 수도사의 의혹을 풀어 주었다. 성인은 지팡이로 땅을 쳤고, 그러자 백합 하나가 솟아났다. 이는 주님을 잉태하시기 전에 성모 마리아는 동정이셨음을 나타내는 표지였다. 다시금 지팡이로 땅을 치자, 또 하나의 백합이 솟아났다. 이는 주님을 출산하시는 순간에도 성모 마리아는 동정이셨음을 말해 주는 증거였다. 이어서 성인이 “출산 후에도 동정이셨지요.”라는 말과 함께 또 한 번 땅을 치자, 주님을 출산하신 후에도 성모 마리아는 동정이심을 확인해 주는 세 번째 백합이 솟아났다.

 

이 일화를 아는 중세기의 화가들은 ‘주님 탄생 예고’를 주제로 그림을 그릴 때 위대한 기적을 상기하며 줄기 하나에 꽃 3송이가 핀 백합을 화폭에 담았다. 이러한 곡절을 거쳐서 장미뿐 아니라 백합꽃도 성모 마리아를 나타내는 상징물이 되기에 이르렀다. 나아가, 백합은 예로부터 아픔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는 식물로도 알려져 있었던 터라, 세상의 죄악에 대한 치유와 해소를 가져오는 데 일조하신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데는 손색이 없었다.

 

 

‘주님 부활’의 상징

 

이런 이야기도 전해 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뒤,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기도하기 위해 들르셨던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아름다운 백합 꽃송이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기도하시는 동안에 피땀을 흘리셨는데, 그 방울방울들에서 피어난 것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꽃들은 ‘흰색으로 피어난 희망의 사도들’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주님 부활’을 묘사한 그림들 가운데 중세기와 르네상스 시기에 그려진 것들에는 백합꽃이 그다지 등장하지 않는다. 백합꽃 대신에 입구를 막았던 돌이 치워진 무덤에서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시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당시의 화가들이 이렇게 그린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무덤에서 돌이 치워졌다는 것에 대해 교부들이 부여한 심오한 뜻을 표현하고자 했다. 교부들의 해석에 따르면, 무덤의 입구를 막았던 돌은 구약의 율법(십계명)을 새겨 넣은 돌판 또는 옛 율법 자체를 상징한다. 구세주시요 사랑의 계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매장되고 돌로써 감춰지셨던 것처럼, 구약성경에서는 율법의 정신이 글자들 속에 숨겨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셨기에 옛 율법은 더는 무의미해졌다는 것이다.

 

흙에 묻혀 있는, 그래서 생명이 없는 듯이 보이는 백합의 알뿌리는 그리스도께서 묻혀 계시던 무덤을 나타낸다. 그렇지만 차갑게 얼어붙은 대지에서 새로운 생명의 싹을 틔우는 백합은 죽음에서 되살아나신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던 백합의 알뿌리가 다시 싹을 틔우고 살아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돌아가셨으나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다. 나아가, 백합꽃은 죽음에서 되살아나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생명을 나타낸다. 꽃의 순백색은 거룩하신 구세주의 정결을 가리키고 황금색은 고결한 그분의 왕권을 가리킨다. 또한 나팔처럼 생긴 꽃의 모습은 다시 태어나 새로운 생명을 누리도록 초대하는 가브리엘 대천사의 나팔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백합꽃은 ‘주님 부활’을 나타내는 데 그야말로 알맞은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백합이 사순시기에, 특히 성삼일 기간에 교회와 가정을 꾸미는데 흔히 쓰이고 ‘주님 부활’을 표현하는 그림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반부터다.

 

이런저런 곡절들로 해서 한 종류의 백합꽃이 ‘주님 탄생 예고’를 상징할 때는 마돈나 백합꽃(성모 마리아 백합꽃)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고, ‘주님 부활’을 상징할 때는 부활절 백합꽃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3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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