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159. 복음과 사회교리(「간추린 사회교리」438항)
전쟁은 탐욕과의 싸움…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 스텔라: 전쟁은 왜 일어난 걸까요? 사람들이 많이 죽었데요. 왜 그런 비참한 죽임을 당해야 할까요? 비신자: 전쟁이 때로는 자국의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 아닐까요? 안전과 국익을 위해서라면 선제타격도 필요하고요. 베드로: 하지만 국가 간 긴장감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요? 불안감을 일으키기도 하고요. 비신자: 제 생각은 다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국의 이익이 먼저가 아닐까요? 이 신부: 함께 이야기해 봐요! 21세기에 이런 일이? 전 세계인들이 생생히 지켜보는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고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침략전쟁을 국가 안보라는 거창한 대의명분으로 포장하고 진실을 숨길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약소국 침략의 무도한 장면들, 살상과 파괴, 금지 무기 사용(진공폭탄), 무고한 이들과 어린이들의 죽음,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의 참담한 처지를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소수의 독재국가를 제외한 지구촌의 모든 이들이 이를 규탄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개탄하시며, 모든 정치적 행위와 계획은 당파적 이익이 아니라 형제애를 위한 것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가톨릭교회는 결코 전쟁을 용납하지 않으며 폭력과 전쟁은 하느님의 진노를 사는 범죄행위로 규정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438항) 전쟁의 목적? 한국이나 이스라엘처럼 우크라이나에는 역사적 아픔이 많았습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동서의 길목, 흑토지대가 광활히 펼쳐진 유럽 최대 곡창지대이기에 강대국들의 침략이 빈번했기 때문입니다. 13세기 몽골을 시작으로, 1793년 러시아 합병과 1991년 독립에 이르기까지 혹독한 역사를 겪었고 러시아는 합병 후 강제 동화정책을 시행했으며 우크라이나의 수많은 인명을 해쳤습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에는 지금도 지난 수백 년간 형성된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습니다. 본래 한 뿌리였던 러시아-우크라이나의 복잡한 과거사가 이를 말해 줍니다. 그래서 전쟁은 최종적으로 정치적·경제적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요? 사실 그것은 영토, 자원, 경제적 이익, 패권의 욕심이며 이번 전쟁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탐욕스러운 욕심과의 전쟁 영문도 모른 채 전장에 투입된 병사들, 민간인에 대한 발포를 거부하고 가족들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전쟁의 공포를 고백한 병사에 이르기까지 비인간적 실상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항복한 병사에게 음식을 주며 격려한 주민의 이야기, 조국의 만행을 대신 사과한 평범한 사람들, 희생된 이들을 애도하고 하루빨리 평화가 도래하길 바라는 이들까지, 훨씬 많은 사람이 야만적 폭력에 저항하며 보편적 형제애와 사랑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 전쟁의 본질은 침략국과 피해국 간 전쟁만이 아닙니다. 수십 년 불의한 독재를 일삼고, 야욕을 품은 한 독재자의 욕심과의 전쟁입니다. 또한 수천 년 역사 동안 숱하게 인류 공동체를 비극으로 몰아넣었던 교만스러운 탐욕과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이웃사랑과 평화에 대한 염원, 원수마저 사랑하라는 하느님 말씀으로 저항해야 합니다. “서로 다른 정치 공동체들 사이에서 생기는 긴장, 국가들의 안정과 국제적 안전을 해치는 긴장을 해소하려면 협상 노력을 통하여 공동의 규정을 이용하고, 정의는 전쟁에 의존함으로써 추구될 수 있다는 생각을 단호히 거부할 필요가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438항) [가톨릭신문, 2022년 3월 13일, 이주형 요한 세례자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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