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 상징 읽기] 주님 수난의 상징들, 그리스도의 무기 중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적 감수성이 남달랐던지 교회 안팎에 그리고 교회의 예술작품들에 묘사된 상징들과 상징적 소도구들을 보면서 그것들에 담긴 의미를 어렵지 않게 알아보곤 했다. 그리하여 하나의 문장(紋章)이 가령 날개 달린 사자가 복음사가 성 마르코를 나타내는 것처럼 특정한 인물을 나타내고, 또는 백합이 주님 탄생 예고를 가리키는 것처럼 중요한 사건을 뜻하기도 한다고 이해했다. 그렇게 상징적 표상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간결하고 명료하게 무엇인가를 상징하며 교회의 신앙 전통과 가르침에도 부합하는 것으로서 공감되어 왔다. 그렇데 된 이유들 중 하나는 중세기의 예술가들이 가톨릭 정신으로 충만해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창작해내는 그림이나 조각, 건축물이 절대적인 무엇을 뜻하거나 상징한다고 믿어 마지않았다. 말하자면, 한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곧 그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가톨릭의 구원 역사의 중심에 자리하는 주 그리스도의 수난을 표상하는 것들은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시작된 주님의 번민, 배신당하심, 붙잡히심, 재판받으심, 사형 선고 받으심, 십자가에 못 박히심, 십자가에서 내려지심, 무덤에 묻히심 등 수고수난(受苦受難)을 나타내는 상징들은 아주 일찍부터 교회의 그림이나 조각에 도입되었고, 믿는 이들은 그것들을 자기 신앙 세계에 받아들였다. 그러한 그리스도 수난의 상징들에는 ‘그리스도의 무기’(Arma Christi)라는 아름다운 명칭이 부여되었다. 그야말로 그것들은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겪어야만 하셨던 일련의 수고수난을 나타내는 ‘수난의 도구’들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악마와 죽음과 죄악을 물리치기 위하여 사용하신 무기였다. 주님 수난을 상징하는 기구들 프랑스 꼴롱주 라 후즈(Collonges-la-Rouge)에 있는 11세기의 건축물인 성 베드로 성당에는 주님 수난을 상징하는 주요 도구들이 일목요연하게 묘사되어 있는 두 폭의 그림이 있다. 이 그림들은 중세기와 르네상스시기에 나온 문헌들에 실려 있는 삽화들이며 화가들의 회화 작품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님 수난의 도구들에 대해서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좋은 표본이자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림 1’의 왼쪽 아래에는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괴로워하시며 기도하신 일을 나타내는 상징들 중 하나인 성작이 있다. 흔히 ‘고통의 십자가’라고도 불리는 이 성작은 삽화들에는 종종 귀한 보석으로 장식된 황금잔과 잔 위에 서 있는 붉은색 십자가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극한의 근심과 번민으로 흘리신 피땀을 나타낸다. 그 옆에는 배신의 상징인 등불과 횃불이 있다. 이것들은 배신자 유다의 안내를 받아서 로마 군인들과 성전 경비병들의 무리가 등불과 횃불을 들고, 또한 무기를 들고 그리스도를 잡으러 온 것을 가리킨다(요한 8,3 참조). 칼 또는 막대기가 X자 모양으로 교차되어 묘사되면 배신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이 그림에서 칼은 아마도 대사제의 종인 말코스의 귀를 자르는 데 사용된 베드로의 것일 터다. 칼과 더불어 잘린 귀는 종종 겟세마니 동산에서 그리스도께서 악의 무리에게 잡히신 것을 나타낸다. 그림의 중앙에는 그리스도께서 신문을 받으시고 사형 선고를 받으신 것을 가리키는 기둥이 있다. 이것은 또한 본시오 빌라도의 명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기둥에 묶이신 가운데 매질을 당하신 것을 연상시킨다. 기둥 꼭대기에는 베로니카의 수건이 있는데, 이는 힘겹게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그리스도께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 드리고자 베로니카가 내어 드린 수건에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얼굴을 새겨 주셨다는 일화와 관련된다. 기둥의 왼쪽에는 채찍(더러는 채찍 두 개가 X자 모양으로 교차되어 나타나기도 한다)이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매질을 당하신 것을 상기시킨다. 기둥의 오른쪽에는 악인의 무리가 주님을 조롱하고 폭행할 때 손에 들었던 몽둥이 또는 갈대가 있는데, 이는 주님께서 조롱을 받으시고 매질을 당하신 것을 가리킨다. 종종 침을 뱉는 얼굴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형 집행인들의 짐승 같은 행위를 나타낸다. 그리고 한 줄로 이어져 있는 은돈 서른 닢은 유다의 배신을 나타낸다. 오른쪽 아래에 있는 물병은 빌라도가 손을 물에 씻은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물병 옆에는 잘린 손이 있다. 주님의 수난 장면을 묘사하는 데는 손이 많이 사용되었다. 중세기의 화가들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장면을 표현할 때 화폭의 배경 여기저기에 이와 같은 모양의 잘린 손들을 배치했다.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중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상상력은 그것들이 뜻하는 바를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 예를 들자면, 그리스도를 고통스럽게 한 손들이 적지 않았다. 누군가는 주먹을 움켜쥐고 주님을 때렸고, 또 누군가는 주님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조롱했다. 그런가 하면 베드로의 손은 칼을 뽑아 말코스의 귀를 잘랐고, 배신자 유다의 손은 대사제의 손에서 은돈 서른 닢을 받았다. 이런 장면에서는 종종 주님께서 피를 흘리시는 일에 자신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대야의 물에 씻는 빌라도의 손도 등장한다. 더러는 빌라도가 손에 묻은 물기를 닦기 위해 사용한 흰 수건도 등장한다.
주님 수난을 상징하는 다른 도구들 주님 수난의 상징하는 도구들의 두 번째 모음인 ‘그림 2’에서는 빈 십자가 3개가 두드러져 보인다. 이 십자가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두 강도가 함께 처형당한 것을 나타내는데, 중앙의 큰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이고 좌우의 두 십자가는 강도들의 것이다. 중앙 십자가의 기단 양쪽에는 우슬초 두 포기가 있다. 이는 주님의 십자가형에 관한 요한복음서의 기록과 관련된다.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19,29) 그런데 정작 신 포도주와 쓸개즙을 머금은 해면 그리고 이 해면을 꽂은 우슬초 가지는 중앙 십자가의 왼쪽에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그리스도의 심장을 꿰찌른 창이 묘사되어 있다. 십자가의 양쪽에 하나씩 있는 사다리는 그리스도의 시신을 내릴 때 사용된 것이다. 중앙의 십자가의 가로나무 위에는 아주 일반적인 두 가지 상징, 곧 망치와 집게가 있다. 망치는 죄 없으신 그리스도의 몸에 못들을 박을 때 사용되었고, 집게는 그분이 숨을 거두신 후 그 못들을 뽑을 때 사용되었다. 주님 수난의 상징으로서 이 두 가지 도구가 제외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마찬가지로 수탉 또한 그리스도께서 예고하신 대로 닭이 울기 전에 베드로가 세 번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한 배신을 나타내기 위해 거의 언제나 등장한다. 이렇게 주님 수난의 상징들에 대한 기본적인 점들을 알고 나면 중세기의 문헌들과 그림들에서 볼 수 있는 주님 수난의 많은 상징들을 어느 정도는 스스로 분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4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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