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166. 양심의 판단(「가톨릭 교회 교리서」 1776~1782항)
양심의 존재 믿는 것은 양심 넣어주신 하느님을 믿는 것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훔친 물건은 지우개였습니다. 훔칠 때보다 훔치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더 가슴이 뛰었습니다. 심장이 터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누구나 처음으로 죄를 지었을 때 가슴이 심하게 뛰었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양심’입니다. 인간을 존엄하게 만드는 요소 가운데 ‘양심’을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양심은 우리 안에 넣어진 “하느님의 목소리”(1776)입니다. 양심은 인간이 올바른 윤리적 판단을 하며 당신께 나아오도록 넣어주신 “내적 법”(1784)입니다. 양심이 없다면 인간이 하는 행위에 대한 책임도 있을 수 없습니다.(1781 참조) 모르고 한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이나 유물론자, 진화론자들은 양심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양심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 법을 모든 사람 안에 동일하게 넣어주신 유일한 입법자이신 창조주 하느님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에 동일한 법이 존재하고 있다면 그 법을 정한 하나의 입법기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무신론자들은 양심을 그저 자라면서 교육과 환경에 의해 형성된 도덕적 선택의 기준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선천적 양심의 존재를 증명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제가 제안하고 싶은 두 가지 증거는 이것입니다. 첫째 ‘거짓말 탐지기의 발전’입니다. 현대의 ‘슈퍼 거짓말 탐지기’는 정신 이상이 아니라면 누구도 속일 수 없다고 합니다. 동공의 떨림이나 혈압의 변화, 몸에서 일어나는 전기신호나 땀의 증가 등은 아무리 사이코패스라 해도 스스로 조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짓말 탐지기는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마음의 법정인 양심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아니면 발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인간에게 양심이 없다면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모기는 아무리 피를 빨아먹어도 미안하거나 고마운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등동물로 갈수록 받으면 주어야 한다는 관계의 법칙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무리생활을 해야 하는 동물들은 어미로부터 키워지며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 고마움에 어미가 원하는 대로 따라주며 성장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도 늑대에게 키워지면 늑대에게 고마워서 늑대처럼 걷고 늑대처럼 짓습니다. 우리는 인간 부모에게 고마워서 부모가 원하는 말도 배우고 걸음마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받은 것에 대해 고마워서 보답해야 한다는 “황금률”(1789)과 같은 법이 선천적으로 우리 안에 들어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양심보다 위에 있는 인간의 존엄한 가치가 ‘자유’입니다. 양심은 신호등처럼 옳고 그름만 가려줄 뿐입니다. 건너고 안 건너고는 우리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자유의지로 양심을 거부할 수 있다고 양심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양심의 존재를 독배를 마시기까지 거부하지 않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억울했지만 양심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양심을 넣어준 신이 자신이 따른 양심의 법대로 심판해주리라 믿었습니다. 이처럼 양심을 긍정하는 것은 곧 신과 내세의 심판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양심의 존재를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양심을 넣어주신 하느님도 믿는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22년 5월 1일, 전삼용 노동자 요셉 신부(수원교구 영성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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