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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 안 상징 읽기: 비둘기의 여러 가지 상징성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6-12 조회수1,768 추천수0

[교회 안 상징 읽기] 비둘기의 여러 가지 상징성

 

 

- 비둘기 한 쌍.

 

 

중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아담과 하와가 저지른 원죄의 결과가 에덴동산에 있던 모든 것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우리를 둘러싼 모든 피조물에게는 좋은 면도 있고 악한 면도 있다고 보았다. 이런 맥락에서 중세기에 나온 동물우화집들의 저자들은 새들이며 동물들에게서도 하느님의 창조와 관련되는 중요한 상징성을 읽어내고자 했다. 가령, 성모님을 태우고 베들레헴에서 이집트까지 오갔던 나귀는 겸손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가 하면 특유의 울음소리와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 고집불통으로 해서 여느 나귀는 흔히 복음 말씀을 들어도 이해하지는 못하는 아둔한 사람을 상징하기도 했다.

 

그리고 새들 중에서 비둘기가 지닌 상징성은 사뭇 다양하다. 이를테면 비둘기는 잘 알려진 대로 성령을 상징한다. 나아가 믿음에 충실했던 가톨릭 신자의 영혼, 성체, 정결, 배필을 향한 사랑에 충실한 사람을 상징하기도 한다.

 

- 웨딩케이크 위의 비둘기 한 쌍.

 

 

동물우화집이 말하는 상징성

 

먼저 11세기 초 몬테 카시노 수도원의 원장을 지낸 수도승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유명한 동물우화집에 실려 있는 이야기를 보자.

 

시(詩) 형태로 되어 있는 이야기의 첫 부분에서는 비둘기가 절개 굳은 새라고 일컫는다. 비둘기는 평생토록 단 하나의 짝을 만나서 해로한다. 그러다가 어느 한 짝이 먼저 죽으면 남은 한 짝은 다른 짝을 새로 찾으려 하지 않고 남은 생애를 다른 비둘기들과 떨어져서 지낸다. 잎이 무성한 가지에는 앉지도 않으며 마른 가지에 앉아서 노래 대신에 한숨을 쉬며 죽은 짝을 애도한다. 그렇게 남은 짝이 먼저 간 짝을 늘 마음속에 품고 그리워하며 지내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비둘기가 절개를 지키며 산다’고 칭송한다.

 

둘째 부분에서는 이러한 비둘기의 삶을 상징적으로 해석한다. 비둘기가 단 하나의 짝과만 부부의 인연을 맺는 것처럼, 일단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결합된 신실한 영혼 또한 언제까지나 그분 안에 머물며, 설령 죄를 지었다고 그 죄로 말미암아 그분에게서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둘기가 절개를 굳게 지키는 것처럼, 신실한 영혼은 설령 하늘에 계신 배필에게서 은총과 사랑으로 위안을 받지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 배필을 향한 신실함을 끝까지 유지한다는 것이다. 신실한 영혼이라면 육신과 현세에 관한 일에는 눈길을 주지 않으며 다만 늘 신앙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던 시절을 돌아본다는 것이다.

 

비둘기가 세상의 즐거움을 추구하며 푸르른 가지에 앉는 대신에 마른 가지에 앉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라고 설명한다, 곧 마른 가지에 앉는 것은 마음으로 진정 아파하고 뉘우치는 그리스도인의 회개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로써 신실한 가톨릭 신자라면 세상 마지막 날에 자신과 모든 인류를 심판하러 오실 배필을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기다려야 하는지를 말해 준다는 것이다.

서양에서 짝끼리 서로 충실하고 절개를 지키는 비둘기 한 쌍이 결혼을 알리는 초대장이나 카드, 그리고 결혼식장을 꾸미는 장식물에서 한 쌍의 부부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쓰이게 된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더러는 묘비나 묘지의 장식물에도 비둘기 두 마리가 등장하는데, 이 경우에는 그곳에 묻힌 부부의 부부애와 충실함을 가리킨다.

 

 

비둘기에게서 보는 영성적 상징성

 

교회는 일찍부터 비둘기를 세상을 떠난 가톨릭 신자들의 영혼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예컨대 죽어가는 순교자를 그린 그림을 보면 비둘기가 순교자의 입에서 나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비둘기가 입에 올리브 가지를 물고 있는 장면도 있다. 이는 노아의 방주와 연결된다. 홍수로 온 세상이 물에 잠겼을 때 비둘기가 돌아와 안전하게 보호받고 쉴 수 있었던 유일한 곳이 방주였던 것처럼, 가톨릭 신자의 영혼이 마침내 돌아올 곳은 안전한 피신처이며 쉴 자리인 참된 구원의 방주인 교회라는 것이다.

 

- 클로비스의 세례식(좌)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우).

 

 

하느님의 셋째 위격이신 성령의 상징

 

비둘기는 무엇보다도 삼위일체 하느님의 셋째 위격이신 성령을 상징한다.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셨을 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마태 3,16) 사실, 복음사가들은 하나같이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셨을 때 성령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셨다고 기록했다.

 

중세기까지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그림으로 표현할 때 일반적으로 성자 하느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계시고, 성부 하느님께서는 왕관을 쓰시고 성자 하느님 뒤의 옥좌에 앉아 계시며, 성령 하느님께서는 성부 하느님의 머리 위에 계시는 비둘기 형상으로 나타내곤 했다.

 

프랑크 왕국의 초대 왕인 클로비스(481∼510년 재위)가 세례를 받은 뒤부터 랭스 성당의 세례대에는 황금 비둘기가 걸려 있었다. 이는 그가 이곳에서 세례를 받을 때 비둘기가 성유가 담긴 병을 물고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이 일이 있은 뒤로 비둘기는 수많은 성당의 세례대 위에 설치되거나 아니면 세례대에 조각되었다. 그리고 이 성유병은 1793년 프랑스 혁명의 와중에 파손되기 전까지 역대 프랑스 왕들의 대관식에서 왕에게 기름을 바를 때마다 사용되어 왔다.

 

비둘기는 또한 성령의 감도(感導)를 나타낸다. 그리하여 성 대 그레고리오를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상할 때는 흔히 비둘기가 그분의 어깨 위나 아니면 아주 가까이에서 하느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조근조근 전해 주는 모습으로 묘사하곤 한다.

이 밖에 비둘기 7마리가 함께 있는 것은 성령의 7가지 은사를 나타내고, 12마리는 성령의 12가지 열매(현재는 9가지 열매, 갈라 5,22-23 참조)를 나타낸다. 그리고 7개의 불꽃에 둘러싸인 비둘기는 견진성사를 가리킨다.

 

- 비둘기 모양의 성체 보관 용기(페리스테리움).

 

 

성체를 담는 그릇도 비둘기 모양

 

중세 초기부터 병자와 같이 성당에 나올 수 없는 신자들에게 영해 줄 성체를 따로 보관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때 축성된 성체를 금이나 은으로 만든 비둘기 모양의 그릇에 담아서는 제단 위 천장 덮개에 사슬로 연결해 매달아 두거나 아니면 제단 위에 걸어 두었다.

 

일찍이 3세기에 신학자 테르툴리아노는 교회를 비둘기의 집(columbae domus)이라 말했는데, 이는 그때 이미 봉성체를 위한 비둘기 모양의 그릇이 사용되었음을 말해 준다. 오늘날에도 축성한 성체를 담아 보관하는 성합에 흔히 비둘기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비둘기는 하늘나라에서 성체를 양식으로 먹는 영혼을 나타내기도 한다. 영국 윈체스터 대성당의 세례반(세례 때 사용하는 성수를 담는 그릇)에 새겨진 형상에서 보듯이 십자가가 꽂혀 있는 화병을 향해 그 안에 든 물을 마시러 오는 비둘기 2마리나 또는 빵을 쪼아 먹는 모습의 비둘기 2마리는 성체를 먹고 사는 영혼을 나타낸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6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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