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177. 죄의 증식(「가톨릭 교회 교리서」 1865~1876항)
악의 평범성 - 죄가 만드는 사회 시스템 죄는 죄로 이끕니다.(1865 참조) 개인적인 악은 습관이 되고 그것이 모여 하나의 구조를 이룹니다. 하와는 자신이 죄를 짓고 그것을 평범화하기 위해 아담에게도 선악과를 건넸습니다. 이처럼 죄는 번식하고 증식합니다. 그래서 하나의 “사회적 죄”(1869)를 구성합니다. 개인들이 지은 죄의 결과들이 모이면 “죄의 구조들”이 형성되는데, 이 구조들이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어 같은 악을 저지르도록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런 악의 시스템에 분별없이 머무는 것 또한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가르칩니다.(1868 참조) 나치가 그 대표적인 예이고 빈 라덴을 따르던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시스템 속에 속하는 것 자체가 죄를 짓는 일입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유럽의 600만이나 되는 유다인들을 색출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수용소로 보내는데 나름대로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입니다. 패전 후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도피 생활하다가 1960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게 체포되어 예루살렘에서 재판받고 처형되었습니다. 유다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 재판과정을 정리하여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제목으로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아렌트는 처음에 아이히만이 냉철한 게르만 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상상했지만 실제로는 무척 왜소하고 기가 약해 보이는 평범한 인물인 것에 놀랐습니다. 아이히만은 재판 때 15개의 죄목으로 기소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단 하나의 죄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책임을 지는 위치가 아니었고 따라서 자신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저 하급 공무원으로서 가정의 생계와 출세를 위해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한 것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유다인을 증오해서가 아니라 공무원으로서 나라에서 시키는 일은 최대한 열심히 수행한 죄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렌트는 책의 부제를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 붙였습니다. 어쩌면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들도 나와 같은 처지였으면 나처럼 했을 거 아닙니까?” 그렇지만 그는 유죄를 선고받고 사형당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한나 아렌트가 본 그의 가장 큰 죄는 바로 ‘악한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평범하게 열심히 살아도 사람은 항상 어떤 시스템 안에 속해 그것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 시스템이 악한 시스템인지 선한 시스템인지도 구별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가장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선원이 배에서 평생을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엔 경찰에 잡혀 사형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왜일까요? 그 배가 ‘해적선’이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일한 것이 죄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 시스템이 자신을 선으로 이끄는지, 악으로 이끄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악의 사회성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선이 보통인 공동체에 머무는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이라는 시스템과 대조적으로 세우신 ‘교회’ 공동체입니다. 세상은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죽기 직전 “결국 저는 교회의 딸입니다”라는 말만을 반복하며, 자신이 죄인이 아니기를 희망했습니다. [가톨릭신문, 2022년 7월 17일, 전삼용 노동자 요셉 신부(수원교구 조원동주교좌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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