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184. 의화(「가톨릭교회 교리서」 1987~1995항)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아니면 절대 의로워질 수 없다 어느날 밤 어린이날을 제정한 아동 문학가 소파 방정환 선생의 집에 강도가 들었습니다. 강도를 만난 선생은 “돈이 필요하다면 내가 주겠소”라며 차분히 말했습니다. 선생이 준 뭉칫돈을 주섬주섬 챙겨 나가려 하는 강도에게 선생이 다시 “이보시오. 달라고 해서 줬으면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 하지 않소?”라고 말했습니다. 도둑은 “고…, 고맙습니다!”라며 머리를 긁적이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경찰에게 강도가 붙잡혔습니다. 경찰에게 끌려 들어온 강도를 본 선생은 태연하게 “허허. 또 오셨네! 방금 준 돈을 벌써 다 쓰셨단 말이오?”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경찰이 “아닙니다. 이 자가 여기서 강도질했다고 자백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방정환 선생은 “저 사람은 강도가 아닙니다. 내가 준 돈을 받고 고맙다고 인사까지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생의 말에 경찰은 의아했지만 어쩔 수 없이 강도를 풀어주었습니다. 강도는 무릎을 꿇고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교회에서 ‘의화’(justificatio·義化)라는 말을 쓸 때는 ‘구원’의 어떤 면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의화되기 전에 우리는 모두 불의한 인간, 곧 의롭지 못한 인간이었습니다. 성경에 “의로운 이가 없다. 하나도 없다”(로마 3,10)라는 말은 옳습니다. 도둑은 경찰 앞에서 자신의 힘만으로는 의로워질 수 없었습니다. 그는 방정환 선생이 거저 준 자비 때문에 의롭게 되었습니다. 사실 의롭다는 말은 ‘빚이 없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채무자는 채권자에게 빚을 갚기 전까지는 의로울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빚이 있다는 말은 하느님께 죄를 지었다는 뜻입니다.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 앞에 두렵고 부끄러워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그들을 위해 ‘가죽옷’(창세 3,21)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려주기 위해 어떤 짐승을 죽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짐승의 가죽만이 아담과 하와를 의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위 이야기에서 도둑이 방정환 선생이 보여준 자비가 아니었으면 결코 의로워질 수 없었을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아니면 절대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오시는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1992) 그래서 의화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해 하느님의 의로움을 받아들이는 것”(1991)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문제는 자신들의 선한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로워질 수 있다는 착각에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의로워질 수 있습니다.”(1992) 하지만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희생시켜 의로움의 가죽옷을 주셔도 우리가 안 입으면 그만입니다. “의화는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 사이에 협력관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1993)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1992) 내가 입은 그리스도의 가죽옷을 통해 내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도둑이 아무리 방정환 선생의 자비를 입었더라도 도둑 생활을 청산하고 방정환 선생이 원하는 사람처럼 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실제로는 의로워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입은 이들은 “자기 지체를 의로움에 종으로 바쳐 성화”(1995)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머물러 계시는 사람들은 하느님처럼 됩니다.”(1988) [가톨릭신문, 2022년 9월 11일, 전삼용 노동자 요셉 신부(수원교구 조원동주교좌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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