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신부의 사회교리 해설] 신앙과 양심, 하느님 나라의 시작 알아보기 – 나의 모습 성찰하기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지난여름 개봉했던 ‘한산, 용의 출현’(2022), 몇 년 전 영화 ‘명량’(2014)과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2004-2005) 속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유언입니다. 절대적 난세에 나라를 구하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사한 장군의 모습은 감동과 시원함을 주었습니다. 곳곳에서 전쟁이 발생하고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이 발생하는 오늘날을 그 난세에 비길 수 있을까요? 국내의 정치동향도 혼란하고 삶이 팍팍해지며 실제로 여러 어려움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순신 장군과 같은 성웅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전란의 시대와 오늘날을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오늘 꺼내고 싶은 화두는 바로 “나의 모습”, “우리의 모습”입니다. 어려움이 크건 작건, 시대가 혼란하든 혹은 매우 혼란하든 나와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이순신 장군 같은 영웅은 못되더라도 각자 삶의 자리에서 신앙과 양심, 올바른 가치와 선(善)을 지키며 살고 있습니까? 심화하기 – 무엇이 주님을 따르는 삶일까? 간혹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안타깝고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사회란 별세계가 아니라 사람이 모이는 곳이고, 나와 우리의 모습이 사회를 결정하지 않을까요? 얼마 전 어떤 성당에서 어린이 미사를 집전하는데 그날 복음 말씀이 낮아지고 겸손해지라는 내용이었습니다.(루카 14,7-14) 미사 말미에 “사제이지만 겸손해지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이 어른인 우리의 모습을 보고 배우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말로만 겸손해서는 안 되고 실제로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겠지요. 그렇다면 겸손한 사람은 어떤 모습입니까?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야하고, 하느님 앞에서 내가 부족한 사람임을 고백해야 하고, 욕심 부리기보다 나누고 베풀어야 하며, 불평하기보다 감사하는 사람, 밀알처럼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용감한 사람, 그래서 하느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사람이 진정 겸손한 이가 아닐까요? 사회교리의 가르침 – 신앙과 양심, 사회교리의 조건 가톨릭 사회교리의 여러 원리들이 있습니다. 인간존엄, 공동선, 보조성, 연대성, 그리고 재화의 선용, 어려운 이웃에 대한 우선적 선택, 참여와 책임 등입니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주체는 누구입니까? 바로 나와 우리입니다. 우리가 실천하지 않으면 그 원리들은 오랫동안 창고에 쌓여 빛을 보지 못하는 묻힌 보물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간추린 사회교리가 실현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바탕은 바로 우리의 신앙과 양심이라고 합니다.(간추린사회교리 554항) 특히 교회의 사회교리는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해 그들의 양심을 바르게 이끌고 형성함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81항) 예컨대 사회교리의 가장 중요한 원리가 인간존엄이라고 할 때 그것은 목적이면서 동시에 수단입니다. 기도와 신앙, 말씀과 성사, 전례와 수덕을 통해 그 인간존엄은 우리 자신과 세상을 성화하는 수단이 되며 종국에는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 이탈리아의 알프스라 불리는 돌로미티입니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연, 그 속에 스며든 작고 예쁜 집들이 어우러진 경이로운 풍광입니다. 하느님께서 지으신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세상을 보존하고 지킬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 의무는 우리가 신앙과 양심을 올바로 지킬 때 시작됩니다. <이태리 북부 돌로미티 전경> 레지오의 가르침 – 더 큰 십자가 얼마 전 선후배 신부님들과 담소를 나누는데, 어떤 신부님께서 “사제의 삶이란 늘 십자가를 져야하는 삶이며, 연차가 높아질수록 더 큰 십자가를 져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려운 소임은 왠지 피하고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제 마음이 매우 찔렸습니다. 이와 동일한 예수님 말씀이 있지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마르 8,34) 레지오의 정신도 여기에 뿌리를 둡니다. 제2장 레지오의 목적에서 이야기 하듯 레지오 마리애의 목적은 단원들의 성화(聖化)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그것은 참된 신앙과 양심을 통해 시작되며, 사회교리의 실천을 가능하게 하고 급기야 세상을 주님 보시기에 좋은 곳, 지상의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킵니다. 우리 모두의 선한 양심과 굳은 신앙을 주님께서는 바라십니다. 교회의 사회 교리는 의미와 가치와 판단 기준을 제공하고 이에 따른 행동 규범과 지침도 제시한다. 교회는 사회 교리를 통하여 사회를 구성하거나 조직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하고 양심을 바르게 이끌고 형성하려는 것이다.<간추린사회교리 81항>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10월호, 이주형 세례자 요한 신부(서울대교구 성서 못자리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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