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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톨릭 신학1: 나는 믿나이다라는 고백의 무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1-08 조회수914 추천수0

[가톨릭 신학01] ‘나는 믿나이다.’라는 고백의 무게

 

 

어렸을 때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착한 일을 한 아이에게 선물을 주신다고 굳게 믿었고, 생선 대가리가 제일 맛있어서 먹는다시던 어머니의 말도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산타클로스는 사실 엄마 · 아빠이고, 어두일미인 생선은 정말 값비싼 생선 얘기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억울하거나 속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정말 슬픈 일은 점점 더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그 진위를 속으로 따지고 있는 자신을 보는 일 같습니다. ‘믿음’이란 어쩌면 우리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우리의 마음 속에서 점점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우리가 일주일에 적어도 한번 “나는 믿습니다.”라는 말을 성당에서 고백합니다. 그것도 직접 본 적도 없는 하느님을, 2천년 전에 사셨다고는 하나 지금 나와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너무나 멀리 떨어진 곳에 살다가 십자가에 처형되었던 청년 예수라는 분을, 그리고 성부보다 그리고 예수님보다 더 ‘감’이 잡히지 않는 성령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 것일까요? “우리는”이라고 말할 때는 그래도 은근슬쩍 무리에 묻어가는 듯해서 부담이 좀 덜한데 정말로 “나는”이라고 주어를 붙여서 “믿습니다.”라고 말할 때는 “나의 고백의 무게는 얼마나 할까?”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우리말에서 신경은 “전능하신 천주 성부…를 저는 믿나이다.”로 시작하지만, 본래 신경의 첫마디는 “나는 믿나이다.”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 대해 말하기 전에 우리의 일상에서 ‘믿음’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신앙과 이성>이라는 회칙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삶은 믿음 위에서 가능합니다. 아이는 엄마가 주는 음식을 의심없이 먹으며, 사람들 사이의 진실한 대화와 관계는 신뢰 안에서 가능하고, 정보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일을 진행합니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그 분야의 기초 지식이 옳다는 믿음 하에 학문적 연구를 합니다. “믿음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성취한 지식을 신뢰하고 받아들입니다.” “한 사람이 충만한 확실성과 안정을 얻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신뢰에 가득찬 자기 증여에서입니다.”(신앙과 이성 32항) 믿음은 인간의 삶에서, 인간관계에서, 일에서, 학문 영역에서 가장 기초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 기초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내가 ‘1+1=2이다.’를 믿는 것, 뉴스에서 보도된 내용이 실제 사건임을 믿는 것, 우주 망원경이 찍은 천체 사진을 보면서 우주에 말머리성운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과 같은 것일까요?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는 걸까요? 이 질문들을 품고, 우리의 신앙고백의 ‘말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앞으로 그 고백의 내용들을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분명한 것 하나는 인간은 믿음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2023년 1월 8일(가해) 주님 공현 대축일 서울주보 4면, 최현순 데레사(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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