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학09]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2) 섭리하시는 하느님 섭리라는 말은 뭔가 하느님이 알아서 해주신다는 뜻인 것 같아 좋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실제로 잘 체험되지 않아서인지, 혹은 인간 주도적인 세상이어서인지 친숙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근대 사상 중에 이신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창조주 하느님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느님이 창조 이후에는 인간 역사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으신다는 주장입니다. 반면 교회는 창조가 정적인 것이 아니어서,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을 유지하실 뿐 아니라 그 궁극적 목적으로 이끄신다고 믿습니다. 하느님의 이러한 활동을 가리키는 단어가 섭리입니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창조 신앙이 어떤 순간의 사건만이 아니라 종말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우주의 완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에페 1,3-10에서는 하느님께서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주셨다는 것, 그분을 통하여 우리가 죄의 용서를 받았다는 것, 그리고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창조는 그 완성을 향해 일어난 사건이고, 그 완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성경에도 나타납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콜로 1,16) 그런데 이레네오 성인이 ‘성자와 성령은 창조에 있어 성부의 두 손’이라고 표현하신 것이 흥미롭습니다. 창조에서 성령의 역할은 신약성경에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교회의 전통 안에서는 종종 언급됩니다. 예를 들어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서는 성령을 가리켜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신데 성령께 대해서도 같은 말을 사용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리스도교에서 창조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업적으로 이해합니다. 이 점이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신앙에서 그리스도교가 유다교와 차이를 보이는 부분입니다. 창조가 삼위일체 하느님의 업적이며 그 궁극적 완성을 향해 있다는 가르침은 인간 역사 안에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어떻게 개입하시는지 설명합니다. 히브리서 저자의 말처럼 하느님은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말씀하시다가 마지막 시대에 당신 아들을 보내셨고, 이 아들이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쳤으며, 이분을 믿는 이들에게 생명이 선사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들을 믿게 하시는 이가 곧 성령이십니다. 인간 역사를 완성으로, 그리고 각 사람을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활동을 가리키는 단어가 곧 섭리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에 따르면 하느님께서 섭리의 일차 원인이시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이차 원인으로 참여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피조물인 인간 사이의 무한한 차이를 고려할 때, 이것은 인간의 위대함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동시에 사랑에 있어 하느님의 위대함이기도 합니다. 섭리에 대한 신앙은 로마 8,28을 고백하게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023년 4월 9일(가해) 주님 부활 대축일 서울주보 5면, 최현순 데레사(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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