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216. 일곱째 계명 ② (「가톨릭교회 교리서」 2419~2463항)
이 세상에서부터 천국의 법을 실천하려면? 일본에 유학 중이었던 이수현씨는 2001년 1월 26일 오후 7시15분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기숙사에 돌아가기 위해 신오쿠보역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취객이 선로로 떨어졌고 때마침 열차가 역 구내로 진입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망설이는 이때 이수현씨는 과감하게 뛰어내려 취객을 끌어올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취객과 함께 열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만약 이수현씨가 뛰어내려 취객을 도우려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범법일까요? 아닙니다.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꼭 남을 도와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서는 어떨까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카 16,19-31)에서 부자는 왜 지옥에 갔을까요? 자신이 번 돈으로 자신이 쓰며 살았는데 무슨 잘못일까요? 이 세상에서는 오히려 돈이 많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에게 부러움을 살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들어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천국에도 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제인데 물에 빠진 아이를 그냥 구경만 하다가 성당에 온 신자가 있다면 그를 진정한 하느님 나라 백성으로 인정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어떤 사회에 속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에서 당연히 요구하는 법칙을 따라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그리스도 사랑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를 돕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가난한 이에게 등을 돌리는 사람은 배척하십니다.”(2443)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더욱 강력하게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어 갖지 않는 것은 그들의 것을 훔치는 것이며,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입니다”(2446)라고까지 말합니다. 이런 면에서 고 이수현씨는 종교와 상관없이 천국의 법칙으로 살았기 때문에 분명 천국에 갈 자격을 얻었을 것입니다. 사회교리란 이렇듯 하늘나라의 법칙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실현되어야만 하는지를 몸소 실천하고 가르치는 일을 의미합니다. 빚을 탕감해 주는 희년 제정, 고리대금업과 생존권이 걸린 것들에 대한 담보 금지, 교회와 이웃을 위한 십일조 봉헌, 하루 벌이 일꾼의 품삯을 미루지 않고 매일 지급하는 것, 추수하고 남은 포도와 이삭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남겨 놓는 일 등은 이미 구약 시대부터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하늘나라의 정의와 사랑에 부응하는 일입니다.(2449 참조) 하지만 이러한 일은 현세에서 생존을 걱정해야만 하는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지켜지기 어려웠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이 실현될 수 있도록 “당신께서 당신의 형제들인 가난한 사람들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아보라고 우리에게 촉구하십니다.”(2449) 참다운 인간애가 있을 때 인간 사이에 머물 수 있는 자격을 얻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부합할 때 하느님 자녀의 자격을 얻게 되고 그 자녀 공동체에 머물 수 있습니다. 교리서는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마태 25,45)라는 말씀대로, 우리 신앙인들에게 비록 이 세상에 살고는 있지만 하느님 나라 백성으로서 “먹을 것 없고, 집 없고, 정착할 곳 없는 수많은 사람들 안에서, 비유에 나온 굶주린 거지 라자로를 어떻게 알아보지 못하겠는가?”(2463)라고 묻습니다. 이 세상에서부터 천국의 법을 실천하는 하느님 백성이 존재하는 한, 그래서 사회교리도 사라질 수 없습니다. [가톨릭신문, 2023년 5월 7일, 전삼용 노동자 요셉 신부(수원교구 조원동주교좌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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