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서 DOCTRINE

교리 자료실

제목 가톨릭 신학15: 2천 년 후에 태어난 우리(나)를 위해 돌아가신?!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5-27 조회수385 추천수0

[가톨릭 신학15] 2천 년 후에 태어난 “우리(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은 2천 년 전 이스라엘에서 30여 년을 살다 십자가형에 처형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를 위하여” 내어주는 몸, 흘리는 피라고 당신 죽음의 의미를 설명하셨습니다. 여기서 “많은”이 희랍어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래서 ‘모든 사람’을 의미하기 때문에, 2023년 서울에 사는 나, 우리도 그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에서 출발해 보지요. 예수님이 참 하느님이요 참 인간이시라는 것은 “성령으로 동정녀에게서 나신 분”이라는 신앙고백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참으로 인간이심은 성경과 교회 역사에서 강조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이 단순히 어떤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모든 것, 인간의 구체적인 삶과 운명, 죽음을 포함하여 그 모든 조건들을 취하셨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우시고, 슬퍼하시고,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이 우리와 같아지셨다고 강조합니다.(히브 2,17)

 

이것은 하느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서 예수님이 어떤 위치에 계시는지 보여줍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알려주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콜로 1,15)이시고, 하느님 앞에서는 인간을 대리하여 계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삶과 돌아가심, 부활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즉 당신 아들을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임을 압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시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대리합니다.

 

이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예수님의 역할을 이해해 보지요. 하느님은 사람을 당신의 모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항상 사람을 돌보시고 사랑하시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충실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죄라고 부르는데, 신학적으로 죄의 본질은 ‘하느님을 거스름’, 다시 말해 하느님께 ‘등을 보이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의 핵심도 이것이지요. 죄의 이 본질은 10계명을 거스르는 것을 포함하여 다양한 형태로 표현됩니다.

 

우리와 같은 인간이신 예수님은 이제 하느님 앞에서 이 죄에 대한 책임을 떠안습니다. 한 가지, 하느님은 자비롭지만 동시에 의로운 분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과, ‘하느님을 거스름’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거스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이제 예수님은 인간의 대리자로 하느님 앞에서 이 역할을 하십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죄값을’ 치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대리해서 우리가 하느님께 드려야 할 충실함을 그 누구도 능가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십니다. 즉 겟세마니에서 보여주신 것처럼 아버지의 뜻에 끝까지 충실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얻어주셨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분의 죽으심은 ‘우리를 위한’ 그리고 ‘나를 위한’ 것이지요. 자 그럼,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될까요?

 

[2023년 5월 28일(가해) 성령 강림 대축일(청소년 주일) 서울주보 4면, 최현순 데레사(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 교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