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되라] 신부님은 왜 결혼을 하지 않나요? 예로부터 혼인을 출생, 사망과 더불어 인륜대사라 했습니다. 성경에서도 부부를 일컬어 ‘둘이 한 몸이 된다’고 했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일곱 가지 성사 중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가리키고 이룩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사는 혼인성사입니다. 그러니 혼인의 중요성과 아름다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혼인은 가톨릭교회의 보편적인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로마 가톨릭교회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사제의 독신생활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성공회 신부들은 자유롭게 결혼생활을 합니다. 정교회 신부들은 부제서품 전에 결혼 여부를 결정하지만, 그 선택은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수도회 사제와 주교는 독신이어야 합니다. 반면에 개신교는 독신 은사를 소홀히 합니다. 가톨릭교회에서 사제 독신생활이 하나의 제도로 정착하기 시작하였을 때는 2세기 중엽입니다. 그리고 4세기 말에 이르러 비로소 사제 독신 제도가 교회법으로 성직자들에게 적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서방 교회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 치세(527-565) 때부터 부제급 이상의 성직자들은 독신으로 살도록 하였습니다. 반면에 동방교회는 692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교회 회의에서 일반 부제들과 사제들은 혼인하고 주교들은 독신으로 살도록 결정하였습니다. 그 결과 동방교회에서 독신자들이 모여 사는 수도원에서 주교가 배출됩니다. 가톨릭교회는 그 후 카르타고 교회회의, 제1,2차 라테라노 공의회, 트리엔트 공의회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독신생활은 교회법의 명령일뿐 아니라 겸손히 청해야 할 하느님의 고귀한 선물”임을 재천명하였습니다. 성경에서 독신으로 사신 두 분을 꼽는다면 예수님과 사도 바오로를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실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사람들 손에 고자가 된 이들도 있으며, 하늘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마태 19,12)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처음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궁중에서 환관으로 쓰려고 사람들이 일부러 고자로 만든 이들이 있으며, ‘하늘나라’ 때문에 자신을 고자로 만든 고자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독신을 택하는 동기가 ‘하늘나라’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 역시 독신으로 살면서 전도했습니다(1고린 7,1.8: 9,5), 바오로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았고(1코린 7,29),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고 종말이 목전에 다가왔으니 독신으로 살 것을 권면했습니다(1코린 7.8.25-35,29.31.36-38), 예수님과 사도 바오로에게 있어서 독신으로 살아야 하는 동기는 ‘하늘나라’ 때문입니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사제들은 처음에는 사제가 되기 위해서 교회법의 명령에 따라 독신생활을 서약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이 독신 제도가 하느님과 사람들의 봉사에 더없이 값진 제도임을 깨닫게 됩니다. 바오로는 “주님께서 각자에게 정해 주신 대로, 하느님께서 각자를 부르셨을 때의 상태대로 살아가십시오.”(1코린 7,17)라고 하면서 “혼인하는 사람은 잘하는 것이지만, 혼인하지 않는 사람은 더 잘하는 것입니다.”(1코린 7,38)라는 혼인의 기본 원칙을 제시합니다. [2023년 10월 1일(가해) 연중 제26주일 원주주보 들빛 4면, 유충희 대철베드로 신부(둔내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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