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읽는 단편 교리] 한국 천주교회 신학교의 역사 신학교는 사제직을 희망하는 이들을 영성적, 윤리적, 지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교육 기관입니다. 신학교를 의미하는 라틴어 [세미나리움](seminarium)은 ‘못자리’라는 의미입니다. 못자리는 어린 모종들이 결실을 얻을 땅에 옮겨 심어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곳이지요. 이 단어가 신학교를 가리키는 말로 처음 공식 사용된 건 트렌토 공의회(1545-1563)에서였습니다. 우리나라 신학교의 역사는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최초의 신학생으로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가 뽑혀 마카오로 유학을 떠났지만, 앵베르 주교는 국내에서도 사제를 양성할 필요성을 느껴 정하상과 이신규 등에게 라틴어와 신학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1839년 기해박해로 모든 노력이 수포가 되고 맙니다. 우리나라에서 체계적인 신학교 교육이 시작된 건 1855년입니다. 충북 제천 베론에 최초의 신학교 ‘성 요셉 신학당’이 세워져 신학교육이 이뤄졌는데, 이때도 1866년 병인박해로 신부들이 체포돼 순교함으로써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이후, 1885년 원주 부엉골에 다시 ‘예수성심신학교’가 설립되는데, 조불수호통상조약(1886)으로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자 1887년 서울 용산구 원효로(현 성심여자고등학교 자리)로 이전하였습니다. 천주교의 발전과 함께 1914년에는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 출신 신학생들을 위하여 대구에 ‘성 유스티노 신학교’가 설립되었고, 1927년에는 함경남도 덕원에도 신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한편, 예수성심신학교는 일제의 탄압으로 1942년 폐쇄되면서 학생들이 덕원 신학교로 편입하기도 했는데, 이후 1945년 2월 ‘경성천주공교신학교’로 개칭하여 설립 인가를 받았고, 이때 용산에서 혜화동으로 이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성 유스티노 신학교는 폐교하고, 덕원 신학교도 북한의 공산정권 수립으로 1949년 5월에 문을 닫게 됩니다. 한편, 경성천주공교신학교는 해방 뒤 1947년 4월에 ‘성신대학’으로 승격, 인가되었습니다. 그런데 3년 뒤 한국 전쟁으로 인해 휴교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1951년 1월엔 제주 서귀포에서, 그해 4월에는 부산 영도에서 신학생 양성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전쟁 이후, 1953년 9월부터는 다시 서울에서 신학교육이 이뤄졌고, 1959년에는 ‘가톨릭대학’으로 학교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1962년 3월에는 광주에 ‘대건신학대학’(현 광주가톨릭대학교)이 개교해 충청북도,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지역의 신학생들을 양성하였습니다. 1982년 3월에는 대구에 ‘선목신학대학’(현 대구가톨릭대학교)이 설립되었고, 1983년 12월에는 수원가톨릭대학, 1990년 12월에는 부산가톨릭대학이 설립되었습니다. 또한 1993년 3월에는 대전가톨릭대학, 1995년 12월에는 인천가톨릭대학이 설립되어 사제 양성 및 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소 주일을 맞아, 특별히 성직자와 수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젊은이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기를 빕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에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사제들이 많이 나오기를 함께 기도합시다. [2024년 4월 21일(나해)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의정부주보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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