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학] 파스카 : 우리를 보호하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예수님을 파스카의 어린양으로 고백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1코린 5,7) ‘파스카’(Pascha)란 탈출기 12장에 언급되어 있는 사건을 이야기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는 당신 백성을 구하고자 하십니다. 하지만 파라오는 그들을 내보내려 하지 않았고, 결국 하느님께서는 이집트 땅에 모든 맏이의 죽음이라는 재앙을 내리십니다. 이집트인들에게 벌을 내리시는 날,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집의 문설주에 바르라고 명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그 재앙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냥 지나가도록, 피해가도록 하셨습니다. “내가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탈출 12,13) 이 때문에, 보통 파스카의 중요한 의미를 ‘지나감’이라고 설명합니다. 오늘 저는 이 지면을 통해, 파스카가 지닌 의미를 성서학적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구약성경의 두 가지 언어에 대해 언급을 해야 합니다. 본래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쓰여졌지요. 하지만, 기원전 2세기 무렵, 구약성경이 그리스어로 번역되면서 이제 구약성경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두 가지 언어로 존재하게 됩니다. 로마제국 시대에 제국 동부 지역에서는 그리스어가 공용어였기 때문에, 신약성경의 저자들도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 종종 그리스어 번역본을 사용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예수님을 파스카의 어린양으로 이해했다면, 그것은 어떠한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파스카에 관련된 구약성경의 그리스어 번역이 그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을 제시해 줍니다. 위에서 언급한 탈출기 12장 13절의 그리스어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그 피를 보고 너희들을 보호해 주겠다.(σκεπάζω)” 또한 그리스어 번역본에서 모세는 파스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것은 주님에게 파스카 희생제사이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의 집을 보호해 주신(σκεπάζω) …”(탈출 12,27) 이처럼 그리스어 번역본에서 언급하고 있는 파스카 사건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하느님께서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예수님을 파스카의 어린양으로 이해하게 된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예수님께서 당신 삶을 통해 보여주신 사랑과 용서의 절정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참여할 수 있다면, 즉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과 용서를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 아래에서 보호를 받으며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의 파스카 희생은, 우리를 죄와 악에서 보호해 주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당신의 사랑으로 보호해 주시는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에 우리도 기쁘게 참여해야 하겠습니다. [2024년 5월 5일(나해)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서울주보 5면, 박진수 사도요한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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