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 교리서와 함께 “교리 문해력” 높이기 (7) “신앙의 유산”과 그 해석 – 1 ‘몸으로 말해요’라는 주어진 제시어를 몸짓으로 설명하여 맞추는 게임이 있습니다. 한 명이 설명하면 여러 명이 그것을 보고 정답을 맞히는 형태로 진행이 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여러 명이 일렬로 서서 순서대로 다음 사람에게 설명하여 마지막 사람이 정답을 맞히는 형태로 진행하곤 합니다. 이때 앞사람의 몸짓을 그대로 따라 전달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생각한 정답을 토대로 나름의 재해석을 붙여 전달하기에 처음과는 아주 다른 설명이 되어 버리는 때가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완전하게 전해진 하느님의 계시도 그 내용을 온전하게 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을 거치고 서로 다른 문화권으로 전달되다 보니 해석이 필요해집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전과 성경에 담긴 “신앙의 유산(depositum fidei, deposit of faith)”을 해석하는 권한과 기준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해석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갑자기 등장한 용어 하나를 먼저 살펴보아야겠습니다. “신앙의 유산”이 바로 그것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발행하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발표한 교황령의 제목도 “신앙의 유산”이며, 교회 문헌 안에서 꽤 자주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우리말로는 ‘앞 세대가 물려준 사물 또는 문화’를 의미하는 “유산”이라는 표현은, 라틴어에서는 맡겨진 것을 의미하는 “depositum(deposit)”으로 표현됩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시고 사도들을 통하여 전달된 계시 진리 그 자체를 말하는 용어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 1서의 마지막 권고에서 티모테오에게 맡은 것을 잘 지키라고 권고(1티모 6,20)하며, 티모테오 2서에서는 자신이 맡은 것을 그분께서 마지막 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다고 확신하며 성령의 도움으로 티모테오 또한 맡은 그 훌륭한 것을 지키라고 권고(2티모 1,12-14)합니다.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전하게 당신 자신을 알려 주셨고, 그 계시를 온전히 보존하고 전달해야 할 사명을 부여받은 제자들은 성령의 도움으로, 세상 끝날까지 지켜질 “신앙의 유산”이 자신들에게 맡겨졌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성전과 성경은 교회에 맡겨진 하느님 말씀의 유일한 성스러운 유산을 형성한다”(계시헌장, 10항). 성령의 감도로 기록되어 하느님 말씀 그 자체인 성경과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을 통하여 온전히 전달되는 말씀인 성전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며 동일한 신적 원천에서 솟아 나와 하나를 이루며 같은 목적을 지향하는데(가톨릭 교회 교리서, 80항), 바로 이 성경과 성전이 유일한 신앙의 유산을 형성합니다. 교회는 바로 이 신앙의 유산으로부터 믿어야 할 모든 것을 얻으며 이를 해석하고 전달하는 사명을 지닙니다. 신앙의 유산을 해석하는 권한과 기준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QR코드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이북을 보실 수 있습니다. 교리서 68~73쪽, 80~100항을 함께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2024년 5월 12일(나해)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춘천주보 4면, 안효철 디오니시오 신부] 가톨릭 교회 교리서와 함께 “교리 문해력” 높이기 (8) “신앙의 유산”과 그 해석 – 2 강의를 듣고 나서 그 내용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 하나는 똑같은 것을 들어도 각자가 이해하는 것이 참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해의 폭이 다르기도 하고,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가 다르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왜곡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유일한 메시지를 세상에 선포하고 전달할 사명을 지닌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 안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계시 진리를 어느 정도 공통된 담화로 정리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합니다. 시대의 변화나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로 인한 다양성 안에서 유일한 하느님 말씀의 참뜻을 제대로 해석하고 전달할 사명이 교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가톨릭 교회는 “기록된 하느님 말씀인 성경과 전해지는 하느님 말씀인 성전을 올바로 해석하는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교회의 살아 있는 교도권에만 맡겨져 있다”(계시헌장, 10항)고 가르칩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도권은 “로마 주교인 베드로의 후계자(교황)와 일치를 이루는 주교들에게 맡겨져”(가톨릭 교회 교리서, 85항) 있는 것이며, 성경과 성전은 교도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도신경처럼 우리가 믿을 교리로 고백하는 것들, “교회가 계시된 진리를 확정적인 것으로 그리고 온 교회에 대하여 구속력을 갖는 방식으로 제시하여, 이를 부정할 경우 이단으로 배척되고 파문을 받게 되는”(오늘의 신학: 전망, 원칙, 기준, 29항) 진술들을 우리는 교의(敎義, dogma)라고 합니다. 교회는 공의회라는 주교들의 회의를 소집해 이단에 맞서 정통 신앙이 무엇인지를 밝혀 왔으며, 이러한 역사를 통해 단일한 신앙의 진리를 지키고 이를 교의로 정리해 왔습니다. 그리고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70년)는 교황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목자요 스승으로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자신의 사도적 최고 권위를 가지고,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보편 교회가 고수해야 할 것이라고 결정한다면, 그는 복된 베드로에게 약속하신 하느님의 도움에 힘입어 무류성(無謬性, Infallibilitas)을 지닌다”(제1차 바티칸 공의회, 영원하신 목자, 덴칭거 3074항)고 가르칩니다. 곧 교황이, 또는 교황과 함께 주교들이 교도권을 행사하여 신앙과 도덕에 대한 어떤 가르침을 온 교회가 반드시 믿어야 할 것으로 가르칠 때는 오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교황도, 주교들도 인간이기에 인간의 결정으로 선포되는 모든 가르침에 오류가 없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의문은 개신교는 물론이고 가톨릭 교회 안에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도권은 한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생각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말씀에 종속되어 봉사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 받은 권위에 의한 것이며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울러 특정 개인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해도 신자 전체는 믿음에서 오류를 범할 수 없으며(가톨릭 교회 교리서, 92항), 교도권은 이와 같은 신자 전체의 믿음 안에서 신자들이 실제로 믿고 있는 것을 찾아내어 올바르게 진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2024년 5월 19일(나해) 성령 강림 대축일 춘천주보 4면, 안효철 디오니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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