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학] 하느님을 업신여기며 불행의 길을 선택하는, 죄악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해 한 번쯤 질문을 받아보셨을 것입니다. 성선설은 중국의 유교 사상가 맹자가 주장한 학설로, 인간은 선한 성품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에 맹자는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진 상태를 예로 듭니다. 즉, 어린아이가 곤경에 처한 것을 보면 사람들은 불쌍한 마음이 생겨 사심 없이 아이를 구하려 한다는 것이지요. 한편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했습니다. 만약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면 법과 질서는 필요 없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인간은 선한 존재일까요, 악한 존재일까요? 이 문제는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에게 커다란 숙제였습니다. 성인은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에 기원이 있다면 선의 기원에는 선한 원리가 있어야 하고 악의 기원에는 악한 원리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선하신 분이니 악을 만드셨을 리가 없지요. 그 결과 다음의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모든 실체는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것이므로 그것은 선한 것이어야만 한다. 인간은 선하게 창조되었다. 한편 악은 선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악은 실체가 아니라 선의 결핍이다.” 그리스도교 윤리는 이러한 성인의 생각을 지지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에게 선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음도 인정합니다. 즉, 인간은 나약하다는 것이지요. 이로 인해 인간은 자유의지로 악을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죄’가 생겨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따르면 죄는 “하느님의 사랑을 저버리며 생명과 행복의 길 대신 죽음과 불행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을 업신여기고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죄의 기준은 단순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도덕률(십계명)의 의무와 양심의 명령을 무시한다면 그것이 죄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죄의 근원을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색욕, 탐욕, 나태”로 분류합니다. 바로 이 칠죄종에서 구체적인 죄와 악습이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교만은 남을 무시하고 진리를 거부하며 하느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죄의 근원, 인색은 재물에 대한 애착, 질투는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싫어하는 감정, 분노는 타인을 증오하거나 복수하고자 하는 욕망, 색욕은 성적 쾌락의 무질서, 탐식은 음식과 재물을 무절제하게 탐하는 것, 나태는 주어진 일을 하지 않는 게으름입니다. 이것들이 바로 인간을 불행의 길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어떠한 길 위에 있습니까? 지금 걷는 그 길은 불행의 길입니까, 행복의 길입니까? 만약 죄 중에 있다면 고해성사의 은총을 통해 결핍되어 있는 선을 다시 채워 넣으시길 바랍니다. 선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기 위해 고해소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를 심판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에서 해방하시기 위해 그곳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2024년 5월 19일(나해) 성령 강림 대축일 서울주보 5면, 방종우 야고보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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