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학] 솔로몬의 지혜 = 잘 듣는 마음 ‘지혜로움’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추구해야 할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로 여겨져 왔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지혜’를 일컬어 인간 이성이 추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며 영혼 전체가 사랑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고,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깨우쳐, 사물의 이치와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혜안(慧眼), 즉 지혜로운 눈을 갖도록 노력하라고 가르칩니다. 성경의 저자들 역시 지혜를 깨닫고 살아가는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지혜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책은 잠언입니다. 잠언의 저자는 서두에서 책의 목적이 “지혜와 교훈을 터득하고 예지의 말씀을 이해”(잠언 1,2)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본문에서는 지혜가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지혜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지혜를 저버리지 마라. 그것이 너를 보호해 주리라.”(잠언 4,6) “지혜로운 이들은 교훈을 사랑하지만 빈정꾼은 꾸지람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잠언 13,1) 잠언이 삶에 필요한 다양한 지혜로움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민중들 사이에서 전해지던 것들을 누군가 모아서 정리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의 저자는 이러한 전승의 기원을 솔로몬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잠언.”(잠언 1,1) 이처럼, 이스라엘의 전통은 솔로몬을 지혜로운 임금으로 여깁니다. 대표적으로, 한 아기를 놓고 서로 자신의 아이라고 우기는 두 여인사이에서 진짜 어머니를 찾아준 솔로몬의 판결은 너무나도 유명하지요. 그렇다면 성경의 저자들은, 솔로몬이 지니고 있던 이토록 위대한 지혜로움의 시작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그 답을, 솔로몬에 관한 열왕기의 묘사(1열왕 3,4-15)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왕위에 오른 직후에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기브온에 있는 산당으로 갑니다. 번제물을 바친 날 밤에 하느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솔로몬이 대답합니다.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하느님께서 답하십니다. “내가 네 말대로 해 주겠다.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너 같은 사람은 네 앞에도 없었고, … 네 뒤에도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살펴본 대로, 솔로몬이 하느님께 청한 것은 ‘잘 듣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응답으로 하느님께서 주신 것은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묘사를 보면, 열왕기의 저자들은 솔로몬이 청한 ‘잘 듣는 마음’을 솔로몬이 받은 ‘지혜의 시작’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솔로몬은 하느님의 목소리 그리고 백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노력했고, 그 결과 지혜로운 임금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혜로움’은 비단 솔로몬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닐테지요. 하느님의 목소리에, 이웃의 목소리에 그리고 자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가며 우리도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2024년 6월 9일(나해) 연중 제10주일 서울주보 5면, 박진수 사도 요한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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