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 교리서와 함께 “교리 문해력” 높이기 (12) “야훼” 하느님 “야훼,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이런 가사로 시작되는 생활 성가가 있습니다. 학생 때부터 참 좋아해서 종종 흥얼거리던 성가인데요, 2008년 이후로는 “하느님, 우리 주여”로 제목도, 첫 가사도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바뀐 것은 교황청이 ‘야훼’라는 하느님의 이름을 전례와 성가, 기도에서 사용하거나 발음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침을 내면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도 이 지침을 따르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공동번역 성서와 달리 새번역 성경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분명하게 계시하시는 탈출기 3,15; 6,2 등의 구절을 제외하고는 히브리어 ‘야훼’를 모두 주, 주님, 하느님으로 번역합니다.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이기도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기 위해 ‘야훼’로 쓰여있는 것을 ‘아도나이(나의 주님)’로 읽었기에 우리 말에서도 이를 반영한 것입니다. 더구나 나이가 한두 살만 많아도 그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우리나라의 문화를 생각하면 우리 정서에도 잘 맞는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그 결과로 우리의 일상적인 신앙생활 안에서 ‘야훼’라는 말 자체가 잊힌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름은 “본질과 인격의 신원과 그 생명의 의미를 표현”(가톨릭 교회 교리서, 203항)하기에 하느님의 이름이 계시되었다는 사실과 그분의 이름 자체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하느님의 이름 ‘야훼’를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되기에 유다인들이 ‘야훼’로 쓰고 ‘아도나이’로 읽었다면, 우리는 ‘하느님’이라 쓰고 그렇게 읽으면서도 머릿속으론 ‘야훼’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야훼’는 ‘나는 곧 나다’, ‘나는 있는 나다’, ‘나는 있는 자이다’의 의미(가톨릭 교회 교리서, 206항)를 지닌 신비한 이름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하기에는 ‘당신은 누구십니까?’에 대한 대답이 ‘나는 나야’라는 식이니 이건 이름을 알려준 것도 아니고 안 알려준 것도 아닌 아리송한 대답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하느님 이름의 신비이기도 합니다. 어떤 대상의 이름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것들 속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통해 정해지곤 하는데(예를 들면 인간이나 동물의 자연적인 지능과 구별되는 인간이 만든 지능을 인공지능이라 부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느님의 존재는 그 어떤 세상적인 것으로는 표현이 불가능하고 오직 하느님 자신으로만 표현 가능하니, ‘나는 곧 나이다’ 같은 방법밖에는 알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모세에게, 그리고 우리 인간들에게 이렇게라도 당신 자신의 이름을 분명히 알리심으로써 하느님은 우리와 무관하며 결코 만날 수 없고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를 ‘너’로 삼는 ‘나’로 우리에게 다가오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숨어 계신 하느님’(이사 45,15)이시며 그 이름은 말할 수 없고, 그분께서는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가톨릭 교회 교리서, 206항)이십니다. 또한 ‘야훼’는 ‘나는 있는 자이다’, 곧 오직 유일하게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심을 분명하게 알려 주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존재하기 위해 늘 상대가 필요한 세상의 피조물들과 달리 그분은 오직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며, 그래서 그분의 이름에는 시작도 마침도 없이 영원히 오직 그분만이 ‘있다’는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13항). QR코드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이북을 보실 수 있습니다. 교리서 109~120쪽, 198~231항을 함께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2024년 6월 23일(나해) 연중 제12주일 춘천주보 4면, 안효철 디오니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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