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믿음 · 희망 · 사랑 : 희망의 촛불 밝히기 (1) 기초 편 지난주까지 차동엽 신부님의 저서 『믿음·희망·사랑』 속에서 믿음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희망입니다. 바로 올해 우리가 보내고 있는 ‘희망의 희년’의 핵심, 바로 그 희망입니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1베드 3,15) 누군가가 ‘희망’에 대해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 ‘희망’의 줄기가 인류 역사 속에서 어떻게 뻗어 왔는지 살펴볼까 합니다. 희망의 첫 번째 갈래는 ‘그때로 돌아갔으면’의 희망입니다. 과거지향적 희망, 곧 회복의 희망입니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선포하신 희망도 바로 이 ‘회복’의 희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어 첫 번째 구원을 선포하셨을 때 그 내용은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에 기록된 ‘희년 선포’였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참조) ‘묶인 자’가 다시 풀려나고, ‘눈먼 이’가 다시 보게 되고, ‘억눌린 자’가 다시 해방되는 ‘은총의 해’ 곧 ‘희년’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회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내고 있는 희망의 희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희망의 두 번째 갈래는 ‘반드시 그날은 오리라’의 희망입니다. 미래지향적 희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희망에 대한 기막힌 표현이 성경 속에 있습니다. “이 희망은 우리에게 영혼의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하며 또 저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히브 6,19) 여기서 닻은 내비게이션과는 다릅니다. 내비게이션은 가다가 길을 헤매 다른 곳으로, 또는 엉뚱한 곳으로 가게 할 수도 있지만, 닻은 갈고리가 달려 고정적으로 박혀 있으며 연결된 줄만 있다면 헤매지 않게 할 수 있지요. 참 신기하게도, ‘희망’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티그바’(tikvah)의 원래 뜻은 밧줄입니다. 그러니 희망은 바로 이렇게 붙잡을 수 있는 ‘밧줄’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닻에 연결된 그 밧줄을 잡아당기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방향을 몰라도 닻은 이미 박혀 있기에 상관없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희망의 세 번째 갈래는 ‘지금은 희망할 때’의 희망입니다. 이는 현세중심적 희망을 가리킵니다. 희망에 대해 총망라된, 차동엽 신부님의 『뿌리 깊은 희망』 (위즈앤비즈, 2009)에는 “희망이야말로 절망을 이겨내는 유일한 대안이며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게 해 주는 최후의 보루”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역경이 닥쳤을 때, 무조건 ‘희망’을 품는 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외길입니다. 희망만이 바로 살 길인 것입니다. 희망은 그 자체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2025년 희년을 보내며 하느님을 향해 걷는 길에서 우리 모두 뿌리 깊이 희망을 심을 수 있기를, ‘희망’만이 희망임을 고백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2025년 2월 9일(다해) 연중 제5주일 인천주보 3면, 미래사목연구소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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