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교적 대화 (23) 교회분열 (1) 천주교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에 젖어 있는 타 종교인들과의 대화를 위하여 가상 대화 형식으로 꾸몄으며, 주로 서한규의 “가톨릭교회!와 개신교?”(서울, 게쎄마니, 2012)를 참고하였다. 비신자 : 개신교가 어떻게 갈라져 나가게 되었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개신교에서는 종교개혁이라고 하는데요. 천주교인 : 개신교에서는 종교개혁이라고 정당화하려고 하겠지요?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전혀 개혁이 아니에요. 무엇을 개혁하겠다는 것이었을까요? 비신자 : 교회 내의 기율이 헤이해진 것에 대한 개혁이 아닐까요? 천주교인 : 당시 유행하던 인문주의 영향으로 세속적인 요소들이 끼어들긴 하였지만, 개혁을 외친 이들이 진정 교회의 기율을 개혁하려고 했었는가는 의문이에요. 비신자 : 교회 내 세속화가 문제라면 세속화를 벗어나는 것이 개혁이었겠네요. 천주교인 : 그렇지요. 특히 북유럽 일대에 거듭 악폐가 쌓였다고 해요. 고위성직자 선정에 있어서 권력이다 보니 직접 간접으로 속권의 간섭이 있어서 부적격자도 당연히 생겨났지요. 성직의 엄숙성이 손상되는 사례들도 있었고, 빈부의 격차가 심하게 생겨나기도 했어요. 이런 여파가 성청까지 미치기도 하였어요. 당시까지는 성직자가 결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여러 문제들도 있지 않았겠어요. 이런 것들만 개혁하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고, 자신들도 그렇게 개혁가답게 살았으면 그들의 진정성을 알아주었을 거예요. 비신자 : 이런 사태에 천주교에서는 어떤 개혁적인 조치가 있었나요? 천주교인 : 좀 늦긴 했지만 트리엔트 공의회를 열어서 세속화의 요소들을 가능한대로 정리했어요. 특히 성직자들의 독신을 교회법으로 의무화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천주교 성직자들은 의무적으로 독신생활을 하는데, 반면에 개신교에는 그런 의무가 없지요. 비신자 : 그러면 개혁자라는 이들은 개혁가답게 살았나요? 천주교인 : 참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루터는 일생을 독신으로 지낼 동정 서원을 한 가톨릭의 수사 신부였어요. 그런데 42세 나이로 하느님께 드린 정결서원을 깨뜨리고 26세의 젊은 수녀인 가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생활을 시작했어요. 루터와 동지였던 에라스무스까지 이것을 조롱했어요. 비신자 : 하느님께 바친 동정 서원을 파기했군요. 다른 것은 또 없나요? 천주교인 : 수도자는 3대 서원을 해요. 청빈, 정결, 순명이지요. 루터는 또 로마교황의 교서를 대중들 앞에서 불사르는 반역을 저지르지요. 반평생을 장상으로 섬기던 분을 대한 극도의 모욕을 개혁자로 자처하는 그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순명 서원에 대한 파기에요. 비신자 : 불가능한 이혼과 재혼을 허락해 주기도 했다던데요. 천주교인 : 루터는 정치가의 보호가 아니었으면 당시로서는 살 수 없었지요. 자기를 보호해 주던 헤센의 백작 필립의 이혼을 허락해 준 겁니다. 필립은 일곱 남매를 낳아준 조강지처를 버리고, 열일곱 살 난 처녀와 결혼할 것을 마음먹고 루터와 멜란히톤에게 승낙을 요구합니다. 필립의 후원이 절대로 필요했던 그들은 옳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비밀 조건으로 허락해 줍니다. 그러나 필립은 드러내놓고 목사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립니다. 교황이 헨리 8세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아서 영국 국교인 성공회가 갈라진 사실을 상기해 보세요.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그러니 교회 기율을 개혁하기는커녕 자신들의 교파에도 기율이 서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의 기율에 있어서 본인들이 개혁 대상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2025년 2월 9일(다해) 연중 제5주일 청주주보 3면] 호교적 대화 (24) 교회분열 (2) 비신자 : 루터가 그러면 교리 부분에 대해서는 어떠했나요? 천주교인 : 루터가 개혁 대상으로 삼은 것은 뜻밖에도 교리 부분이었어요. 이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보겠어요. 구원을 좌우하는 하느님의 진리를 아무리 똑똑하다 하더라도 누가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겁니까? 비신자 : 믿기만 하면 구원된다는 데요? 천주교인 : 예, 당시 가톨릭측 대표와 논쟁에서 루터는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주장합니다. 그에 비하여 가톨릭측은 믿음과 행위의 일치를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전부를 믿고 실천해야 합니다. 믿는다면 그에 따른 실천도 있어야 진실로 믿는 것이지요. 비신자 : 그러면 선행만을 통해서 구원될 수 있나요? 천주교인 : 선행만을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단이 있었어요. 펠라지우스 이단인데, 아우구스티누스와의 논쟁에서 이미 가톨릭교회로부터 단죄 되었어요. 비신자 : 믿음과 실천은 어떻게 관련되나요? 천주교인 : 믿음 안에는 실천도 들어 있는 겁니다. 주님을 믿는다면 주님의 가르쳐주신 계명을 실행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는 것이지요. 실천함으로써 믿음을 확실하게 합니다. 주님이 명한 계명은 한 마디로 사랑이고 구체적으로는 마태 25장의 최후심판 장면에서처럼 여러 가지로 나오지요. 그런데 개혁가들은 실행은 필요 없다고 하면서 믿기만 하면 된다고 해요. 믿음에 따른 실천이 구원에 있어서 의미 없는 행위라고 하며 이를 개혁한다는 것이에요. 비신자 : 그러면 성경에도 실천에 대한 내용이 있나요? 천주교인 : 차고 넘칩니다. 지면 관계상 두 개만 적어봅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7, 21). “산을 옮길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고린 13, 2). 바오로 사도도 산을 옮길만한 완전한 믿음에 사랑이 없으면 소용 없다는 것을 역설했습니다. 비신자 :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표현은 틀린 것이고, 믿음이라는 표현 안에는 구원에 관한 교리나 실천이나 그와 연결된 모든 것이 포함된 표현이라는 뜻인가요? 천주교인 : 예, 맞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유대인들과의 대결에서 구약 율법 준수로는 의화 및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지, 신약의 율법 준행을 부정한 것은 아니지요. 비신자 : 믿기만 해서 죄인이 구원된다고 한다면, 아무 협력도 요구되지 않고 또 자기 의지로 어떤 것도 필요치 않다고 할 것이니 죄를 계속 지어도 아무 문제가 없겠어요? 천주교인 : 논리적으로 따지면 그렇게까지 나아가지요. 그래서 그런지 루터가 그의 친구 멜란히톤에게 말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이 있어요. “용감히 죄를 지어라. 그리고 믿기는 더욱 굳게 믿어라.”(교부들의 신앙, 487쪽). [2025년 3월 9일(다해) 사순 제1주일 청주주보 3면] 호교적 대화 (25) 교회분열 (3) 비신자 : 루터가 하느님의 진리를 담은 교리 부분을 변경시킨다는 것은 사도 시대부터 1,500여 년 동안 내려온 진리를 건드리는 것이 아닌가요? 천주교인 : 아주 중요한 내용이에요. 교리의 여러 부분에서, 특히 성서에서, 루터는 자기 개인의 생각에 맞추어 빼고 바꾸고 없애고 했어요. 하느님이 특별히 루터에게 그런 특혜를 허락했나요? 그러니 루터를 따르는 제자들도 자기가 생각한 교리가 맞다싶으면 끊임없이 새로운 교회를 차려나가지요.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문제요. 하느님 앞에서 어떻게 책임지려는지 참으로 불쌍합니다. 비신자 : 앞의 말씀을 들어보니 개혁해야 할 것은 안 하고, 개혁해서는 절대 안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개혁을 했네요. 천주교인 : 개혁을 하겠다는 사람은 자신부터 먼저 올바르게 살면서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성덕을 닦아 만대에 귀감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가톨릭 신자들은 고사하더라도 프로테스탄트(개신교) 측에서도 그의 성덕을 칭송하며 본받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교회를 개혁하겠다는 사람에게 이런 사정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요. 비신자 : 개혁을 이야기할 자격조차 문제인가요? 천주교인 : 루터가 개혁의 일부로 성직자들의 사생활을 문제 삼았다면, 본인은 그 누구보다 사생활에 철저했어야지요. 가톨릭의 수사 신부로서 규례에 따라 일생을 독신으로 지낼 동정 서원을 하느님께 바쳤다면 결혼을 그렇게 빨리 서두를 필요가 있었을까요? 파문당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17살이나 차이가 나는 어린 수녀와 결혼을 하였으니, 하느님과의 서원을 깨뜨린 자가 하느님에 대하여 무엇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네요. 또 자기를 보호해 주는 정치가의 이혼과 재혼을 허락한 것이 소위 개혁자가 할 일인가요? 비신자 : 루터가 처음부터 교회에 대항할 의도를 가졌었나요? 천주교인 : 그렇지는 않았어요. 1518년 4월에 하이델베르크 수도원의 공개 토론회에서 루터는 인간의 원죄로 말미암아 완전히 부패되었으므로 자유의지란 없다고 주장하여 동지를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였어요. 이때 교황에게 충심으로 복종한다고 언명했어요. 이후, 교황은 사정을 조사한 후에 그릇된 의견을 바로 잡도록 했는데 루터가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으면서 사태가 악화되었어요. 교황은 1520년 6월 15일, 교서로 60일의 반성 기간을 주었는데 루터는 교황의 교서를 사람들 앞에서 불살라 버림으로서 이듬해에 파문을 당하지요. 이때부터 루터는 교황을 배척하고, 두 개 성사를 제외한 5개 성사를 파기하고, 자신의 3대 원리를 주장해 나가기 시작했어요. 순명서약을 한 장상에게 공개적인 모욕 행위를 했어요. 비신자 : 3대 원리라는 것이 자기 생각대로 구상한 것인가요? 천주교인 : 루터의 주관적 생각으로 은총뿐, 신앙뿐, 성서뿐이라는 것이지요. 여기에 특히, 어려운 선행은 필요 없고 믿기만 하면 구원된다는 달콤한 말에 매력을 느낀 이들, 국수주의적 독일교회 충동을 가진 이들, 교회에 불평이 있는 이들, 교회 혁신을 속단하는 이들이 뒤를 따릅니다. 교리적인 내용들은 앞으로 살펴봅시다. [2025년 5월 11일(다해)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청주주보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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