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학]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닮는 방법(루카복음) 루카복음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전하면서 시작합니다. 바로 유년기 사화(루카 1-2장)입니다. 복음서의 주인공인 예수님의 탄생을 전하는 부분인 만큼, 유년기 사화는 예수님을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에 관한 첫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이러한 의미에서, 루카는 독자들이 예수님의 유년기 사화를 읽으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하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루카 복음에서 ‘자비’(έλεος)라는 단어가 여섯 번 나오는데, 그중에서 무려 다섯 번이 이곳에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루카 1,54)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루카 1,78) 등이 있습니다. 첫 번째 구절은 성모님의 노래에 나오는 것으로 구약에서 하느님이 보여주신 자비에 감사하는 것이고, 두 번째 구절은 즈카르야의 노래에 나오는 것으로 예수님의 탄생 역시 하느님의 자비 덕분이라 말합니다. 그렇다면, 루카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전하면서, 구약시대부터 예수님의 오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하느님의 자비 덕분이었음을 강조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년기 사화에서 강조된 하느님의 ‘자비’(έλεος)는 복음의 이후 내용들에서 어떻게 묘사될까요? 흥미롭게도 ‘자비’라는 단어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딱 한 번 나오는데, 바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9-37)에서입니다. 어떤 율법 교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누가 자신의 이웃인지’ 물어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주시지요.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을 다른 모든 이들은 그냥 지나쳤는데, 사마리아인만이 그를 도와주었다는 내용입니다. 이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이 율법 교사에게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는지’ 물어보십니다. 그러자 율법 교사가 대답합니다. “그에게 자비(έλεος)를 베푼 사람입니다.”(37절) 예수님의 탄생을 전하는 유년기 사화에서,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가 ‘하느님의 자비’로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했던 루카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보여준 행동을 설명하면서 ‘자비’라는 단어를 다시 사용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버림받고 소외된 이웃에게 다가가고 행동할 때, 하느님의 자비를 닮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사마리아인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의 상황과 똑같지는 않지만, 하느님도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이스라엘을 외면하지 않으셨죠. 바로 그 마음이 하느님의 자비일 것입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자비를 조금이라도 닮아, 우리도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025년 5월 4일(다해) 부활 제3주일(생명 주일) 서울주보 5면, 박진수 사도요한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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