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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톨릭 교리: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5-06 조회수59 추천수0

[가톨릭 교리]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1)

 

 

신앙의 선조들과 한국천주교회

 

한국천주교회는 103위 순교성인, 124위의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그리고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 조선 왕조 치하 순교 133위인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근-현대 신앙의 증인 81위인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그리고 베네딕토회 덕원의 순교자 38위인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김치호 베네딕토와 동료 순교자들 등을 신앙의 선조들이라 공경하고 있고, 현재 교회법에 따라 시복과 시성 등의 절차를 준비 중입니다.

 

‘시복’(諡福)이란 단어는 ‘beatus’, 즉 ‘축복받은’, ‘은혜받은’, ‘죽어서 천국에 있는’이라는 뜻과 관련되고, 하느님 은총으로 복되게 된 이들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이들은 복음을 믿고 따른 사람들, 혹은 ‘복자’(福者)라고 합니다. 시성(諡聖)은 복자가 된 하느님의 종을 공적인 전례를 통해 성인들 명부에 올리는 교황의 최종적 행위를 말합니다. 이는 모든 신자가 신앙의 모델로 삼아 따라야 한다는 권고이고, 하느님 곁에서 성인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시성된 하느님의 종은 모든 보편교회가 공경을 드려야 하고, 시복된 분은 시성과 달리 보편교회 전체가 아니라, 일정한 지역이나 공동체에 한정되어 공경합니다.

 

시복이나 시성에 추천될 만한 사람의 조건으로 가톨릭교회는 “삶과 죽음 이후에도, 모든 그리스도교 덕행을 영웅적으로 실천하여 성덕의 명성을 누리거나, 그리스도를 더 가까이 따르고 목숨을 바치는 순교 행위로써 순교의 명성을 누리는 가톨릭 신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현재 한국천주교회는 시성과 시복을 추친 중이고, 특히 최근까지도 한국천주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시복을 추진 중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을 시복하고자 하는 우리 교회의 노력에는 어떤 의의가 있을까요?

 

김수환 추기경(1922년 5월 8일- 2009년 2월 16일)은 일제시대와 해방, 6.25 전쟁과 군부독재 시대, 민주화운동과 문민정부 수립 등 지난 세기 우리 사회의 고통과 희망이 점철되었던 시대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혼란과 격동의 시대를 거치며 힘든 삶의 여정을 거쳐야 했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이 순교자의 후손임을 자각했고, 역사와 인간이라는 주제를 언제나 신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고 통찰하였습니다. 김 추기경은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인으로 살고자 했고, 그리스도처럼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마태 11,29) 사람으로 살고자 노력했으며, 오직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품고 살았습니다.

 

 

‘작고 가난한 사람’의 삶과 영성

 

김 추기경에게 ‘가난’이라는 단어는 삶과 신앙에 있어 핵심적 주제입니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고, 동시에 가난했지만 사람의 도리가 무엇인지, 신앙이 무엇인지 잘 배웠는데, 특히 어머니를 통해 잘 배웠다고 회상했습니다. 신앙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가난하고 겸손한 삶을 묵상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가장 깊은 신비를 깨달았습니다. 소신학교 시절 여러 성인 성녀에 관한 ‘성인전’을 탐독하였고, 이 중에서 특히 소화 데레사 성녀의 영성에 깊이 감화되었다고 합니다. 성녀의 삶과 기도를 통해 하느님 때문에 가난하고 보잘것없이 사는 삶이 신앙인의 가장 위대한 삶임을 배웠다고 회상했습니다. 

 

사제 생활의 시작 역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이었는데, 이 역시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깊이 체험하는 시간이었다고 술회하였습니다. 여러 대담이나 인터뷰에서 성직자 생활 52년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바로 그때, 가난한 신자들과 울고 웃었던 본당 신부 시절이라고 김 추기경은 회고했습니다. 이 체험 역시 그가 이후 주교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들의 권리를 대변하며 살아가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자건 비신자건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김 추기경의 모습은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그들과 미사를 봉헌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슬퍼 우는 사람을 수없이 찾아다녔지만, 김 추기경은 그들과 삶을 좀 더 함께하지 못했음을 늘 부끄럽게 고백하였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가난이 지닌 그리스도교적 의미는 온전히 하느님을 향하는 삶, 하느님께 의지하는 삶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예수께서는 8가지 참 행복에 대해 가르쳐주시면서(마태 5,3-12; 루카 6,20-23 참조), 가장 먼저 ‘가난한 사람’의 행복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가난은 신앙의 중요한 전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 즉 하느님께 온전히 의지하고 신뢰하며 사셨던 분입니다. ‘가난한 사람’의 삶은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모습이고,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입니다. 이는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남은 자들’, 즉 참된 하느님 백성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김 추기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에 따라 살고자 했기에 인간에 대한 관심을 지니고 살았고,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는 신앙을 통해 하느님 사랑에 대한 깊은 묵상과 성찰, 그리고 본인 삶의 체험을 통해 가능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처럼 가난한 자 되고 싶다. 가난한 자 중에서 가난한 자, 모든 사람의 종이 될 수 있을 만큼 가난한 자 …” 김 추기경에게 ‘가난’은 실제 물질적 가난은 물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표현이자, 모든 어려움을 견디게 해 주는 희망의 다른 표현이었으며,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었습니다”(2코린 8,9).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가난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가난한 마음은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자 기준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가난한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겸손하게 살아야 하고, 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언제나 가난한 삶을 지향했던 김 추기경의 삶과 영성은 오직 ‘그리스도를 닮기’(imitatio Christi) 위한 노력과 헌신이었습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4월호,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가톨릭 교리]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2)

 

 

지난달에 이어 김수환 추기경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추기경님을 생생하게 기억할 것입니다. 교회와 시대의 어른이었던 그분을 우리 교회는 ‘복자’품에 올리고자 준비 중입니다. 가톨릭교회에서 성인이나 복자가 되기 위한 기준은 그 사람이 ‘대신덕’(=향주삼덕)과 ‘대인덕’(=사추덕)을 지녔는가 하는 판단입니다. 

 

 

향주삼덕

 

세례로 그리스도와 결합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고, 언제나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가능합니다. 인간적 덕은 은총의 결실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적 덕들은 향주덕(向主德)에 뿌리를 두고 있고, 하느님과 직접 관계됩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 세 가지 향주덕의 근원과 동기와 대상은 삼위일체 하느님이십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 믿음이란 하느님,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시하신 것, 그리고 거룩한 교회가 우리에게 믿도록 제시하는 모든 것을 믿게 하는 덕입니다(1814항). 희망이란 그리스도의 약속을 신뢰하고, 우리 자신의 힘이 아닌 성령의 은총의 도움으로 하늘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게 하는 덕입니다(1817항). 그리스도교적 사랑이란 하느님만을 위해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웃을 자신같이 사랑하게 하는 덕입니다(1822항). 향주삼덕을 자기 삶 안에 체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인데, 추기경님의 성품과 영성은 언제나 이 기준을 향했습니다.

 

 

김 추기경의 믿음, 희망, 사랑

 

추기경님의 믿음은 자신이 순교자 후손임을 자각하는 데서 나왔고, 신앙의 뿌리는 순교 영성이었습니다. 순교자 후손답게 추기경님의 삶에서 신앙은 중요합니다. 사실 추기경님은 원래 신부가 되려는 열망이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 뜻이 분명하다면 신앙을 통해 겸손하게 순명했습니다. 이는 사제 서품식 중 했다고 알려진 기도에 잘 드러납니다. “주님, 사실 저는 다른 길을 가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다른 길은 보여주지 않으시고 오로지 이 길만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 뜻에 따르겠습니다.” 

 

신앙으로 순종하는 추기경님 모습은 성모님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한 처녀를 선택해서 그 처녀를 어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이는 마리아의 응답이었고, 동시에 믿는 모든 이들의 응답이어야 합니다. 은총이란 무엇이고, 구원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에서 마리아는 우리에게 중요한 모범을 보여줍니다. 하느님 구원계획 앞에서 우리는 마리아처럼, 김 추기경처럼 ‘신앙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구원은 하느님에게서 비롯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혼자서도 다 이룰 수 있으시지만, 인간이 순응하고 협력한다면 은총을 체험하고 구원에 이릅니다. 신앙의 신비를 추기경님은 알았고, 믿었으며, 살았습니다. 

 

추기경님은 어렵고 궁핍한 사회현실에 안주하지 않았고, 교회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했습니다. 그리스도교 희망은 현세에 국한되지 않지만, 현실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추기경님은 복음을 입으로 전하고, 몸으로 실천했습니다. 동시에 그리스도교 희망은 언제나 신앙에 근거한 희망입니다. 아브라함이 “희망이 없어도 희망”(로마 4,18)한 것처럼 추기경님 역시 수많은 고난과 시련 중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하느님께 기도하고 갈망하며 어두운 세상에 빛을 증언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 달리 신약의 새 백성은 십자가 희생 제사를 통해 새 계약을 맺었고, 예수님은 계약 실천 사항으로 사랑의 계명, 즉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도록 당부하셨습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 중 “으뜸은 사랑”(1코린 13,13)이라는 바오로 사도 말씀처럼 추기경님은 일생 동안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사실 추기경님의 사랑 실천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많습니다. 

 

1951년 첫 사목 발령지인 안동 본당에서 가난한 주민들을 꾸준히 도왔고,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민원을 해결해 주었으며, 항상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이 되었습니다.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 상황에 가슴 아파하며 북한 동포들을 향한 마음을 자주 표현했습니다. 북한 동포들을 위한 기도 중 매 미사 파견에 세 번째 십자 표시는 그들을 향했습니다. 추기경님은 자신이 실천하고자 했던 사랑이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교회 전체 차원으로 확산되도록 ‘한마음 한 몸 운동 본부’를 설립했습니다.

 

 

성체성사의 삶

 

추기경님의 주교직 사목 표어는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입니다. 이는 예수님처럼 세상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놓겠다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추기경님은 평소 밥의 비유를 여러 번 하셨습니다. 이는 성체성사의 신비를 명쾌하게 설명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몸을 우리에게 내어주셨고, 그 몸을 먹음으로써 우리는 살아가게 됩니다. 빵이 그렇고, 밥이 그렇습니다. 추기경님은 예수님처럼 겸손과 사랑의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어주고, 그들에게 힘을 주고자 했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스스로 밀알이 되고자 했고, 꽃을 피우고자 거름이 되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추기경님은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또한 추기경님은 자신을 ‘바보’라 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바보다. 하느님은 위대하시고 사랑과 진실 그 자체인 것을 잘 알면서도 마음 깊이 깨닫지 못하고 사니까.” 자신을 ‘바보’라고 규정한 이유는 무한하신 하느님 신비 앞에 놓인 인간 상황을 정확하게 간파했던 추기경님 자신의 깨달음을 고백한 내용이고, 이는 동시에 겸손하고 더 낮게 살기 위한 다짐입니다. 스스로 ‘바보’라 부른 추기경님의 사랑과 나눔 정신을 이어 가기 위해 선종 후 1년 후인 2010년 2월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이 설립되었습니다. 일생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며,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인권, 사회 정의를 위한 버팀목이 되었던 추기경님의 정신을 기리는 단체입니다. 

 

추기경님은 죽은 다음에도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미리 작성했던 유언대로 선종 직후 각막 기증을 통해 환자 2명의 눈을 밝혀 주었습니다. 그는 신앙의 신비를 깊이 묵상했고, 그래서 그리스도처럼 내어주는 삶,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삶을 죽기까지 실천했습니다. 추기경님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에 따라 가장 낮은 곳에서 온전히 자기를 내어주는 성체성사의 삶을 실천하고자 노력했고, 수많은 결실을 맺었습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5월호,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가톨릭 교리]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3) “성인들의 통공을 믿으며”

 

 

김수환 추기경 시복 추진 

 

현재 한국천주교회에는 103위 순교성인, 124위의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그리고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 조선왕조 치하 순교 133위인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근-현대 신앙의 증인 81위인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그리고 베네딕토회 덕원의 순교자 38위인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김치호 베네딕토와 동료 순교자들 등을 신앙의 선조로 공경하고, 교회법에 따라 시복과 시성 등의 절차를 준비 중입니다.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 역시 시복을 위해 준비 중입니다.

 

김 추기경을 복자로 기리고자 우리 교회가 노력하는 이유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김 추기경을 신앙의 모델로 삼아 따를만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김 추기경의 시복은 그분이 삶과 죽음의 모든 순간에 그리스도교적 덕행과 성덕을 아주 잘 실천하였고, 매우 모범적으로 그리스도를 잘 따르고 목숨을 다해 복음을 증거한 대표적 신앙인이기 때문입니다.

 

 

“성인들의 통공을 믿으며”

 

교회는 하느님의 공동체이고, 이 공동체는 언제나 친교를 지향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친교(Communio)는 언제나 삼위일체 하느님에 근거합니다. 또한 지상에서 드러난 친교의 의미는 예수님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친교의 의미가 가장 잘 드러나는 표현 중 하나가 ‘성인들의 통공’(通功 communio sanctorum)입니다. 성인들의 통공은 모든 하느님의 자녀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즉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친교를 의미합니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 이는 김 추기경이 주교로 서품된 이후 정한 사목 표어이고, 묘비에 출생 연도와 함께 새겨진 말씀입니다. 이는 원래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만찬 중에 하신 중요한 말씀(마태 26,28; 마르 14,24 참조)이고, 매번 거행되는 미사 중 실체변화의 가장 중심에 선포되는 말씀입니다. 김 추기경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해 모든 인간이 하느님과 연결되었음을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구원경륜 안에서 처음부터 긴밀한 관계였고,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인간은 서로 밀접하게 관계 맺은 존재라 생각했습니다. 

 

김 추기경은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할 소명(召命)을 받았음을 직시하고, 그래서 모든 사람,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김 추기경은 모든 이들을 하느님의 뜻대로 이끌기 위해 사목자로, 교회의 지도자로,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열심히 살고, 기도했습니다. 김 추기경에게는 신앙과 사랑과 봉사가 상호 소통하는 세상이 절실했고, 그래서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으며, 특히 가장 소외되고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했습니다. 

 

김 추기경의 이러한 삶은 성체성사의 의미와도 상통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몸을 바쳐 모든 이의 일치를 위한 제물이 되셨고,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도록 당신 자신을 내어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성체성사의 참된 의미입니다. ‘성인들의 통공’, 즉 함께 기도한다는 것, 그리고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의 궁극적 의미는 결국 모든 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고, 김 추기경은 그렇게 살려고 누구보다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김 추기경은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해 노력한 한 인간이었고, 교회 안은 물론 교회 밖의 사람들과도 함께 하기 위해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했던 그 시대의 어른이었습니다.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신 이유는 하느님이 먼저 인간에게 다가가서 함께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되신 그분은 언제나 모든 인간, 특히 가난한 사람들, 소외받는 사람들, 어렵고 힘든 사람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삶의 기준은 명확히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점을 우리 시대에 가장 잘 살고, 가장 잘 보여 준 분이 김 추기경님입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그리스도를 대신해서’(in persona Christi) 하느님의 뜻을 이 땅에서 실행하는 것이고, 김 추기경은 이 역할을 누구보다 충실하게 수행했습니다.

 

비록 이 땅엔 순교자의 신앙과 피가 흐르지만, 아쉽게도 비그리스도인이 대부분인 이 나라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김 추기경님은 부단히 노력했고, 열심히 사셨습니다. 김 추기경님의 기도와 노력은 결실을 맺었고, 그래서 우리 교회는 성장할 수 있었고, 가톨릭 신자들은 자랑스럽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휴전 상태이고, 때로 불안한 상황을 맞기도 합니다. 분단국가에 있는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야 할까요? 모든 답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에 있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잘 따랐던 사람들의 삶과 신앙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김 추기경님은 누구보다 그리스도를 따라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용기 있게 행동했고, 때로는 침묵했으며, 때로는 지혜롭게 절제했고, 언제나 기도하면서 겸손하게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2027년 여름 한반도 남쪽에서는 ‘가톨릭 세계 청년 대회’(World Youth Day)가 개최될 예정입니다. 이 대회는 가톨릭교회가 지닌 보편성을 전 세계에 분명히 드러내는 시간이고, 동시에 특히 교회 내 청년들에게 신앙을 제대로 알려주고 체험하게 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분단된 한반도에 전 세계 가톨릭 젊은이들을 초대해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K-팝과 K-컬쳐만이 아니라, 순교자의 피로 이루어진 자랑스러운 우리의 신앙을 알려주고, 그들과 신앙적 유대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만일 가장 한국적인 가톨릭 신앙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삶과 사상을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줄 수 있다면, 분명 모든 믿는 이에게 큰 힘과 용기를 줄 것입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따랐던 가장 대표적인 신앙인인 김 추기경님의 삶, 사상, 신앙을 젊은이들이 소개하고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분명 내적 복음화는 물론 외적 복음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6월호,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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